나주를 빛내는 문화재를 찾아서

불상에 나타난 나주인 미소와 소박한 석탑

  • 입력 2008.07.05 15:52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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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재 제64호, 나주만봉리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에 위치한 석조여래입상은 하나의 화강암을 끝이 뾰쪽하게 다듬어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 위에 여래입상을 돋을새김한 것이다.

석조여래입상은 둥근 얼굴에 살짝 감은 눈, 잔잔한 미소를 띤 입, 길게 늘어진 귀에서 원만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서 입고 있는데 U자형의 옷주름이 무릎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손가락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가락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둥근 어깨와 양감있는 가슴, 잘록한 허리의 굴곡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사실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만봉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제78호, 나주송제리 오층석탑(五層石塔)

세지면 송제리 오층석탑은 2층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은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며 홀쭉하고 높아 안정감이 없어 보이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도로 쌓아 올렸다.

1층 몸돌은 지나치게 크고, 2층은 급격히 낮아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에서 4층까지는 3단, 5층은 2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며, 네 귀퉁이는 높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간결하면서 단정한 오층석탑은 지붕돌받침이 4-2단으로 일정하지 않고, 처마의 네 귀퉁이가 많이 올라간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제260호, 나주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다도면 암정리 운흥사지금동여레입상은 운흥사지 발굴조사에서 2001년 9월 16일에 출토된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광배와 몸체와 대좌가 함께 주조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머리는 언뜻 보면 소발(牛足)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오랜 세월동안 마모상태가 심한 편이긴 하나 나발(곱슬곱슬하여 소라껍데기 같은 모양)의 흔적이 역력하다. 더구나 이 나발은 육계 부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코와 입술 부분이 훼손되어 정확한 윤곽이 보이지 않지만 입주위의 양 볼에 나타난 알맞은 볼륨은 8-9세기 금동불에서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양쪽 귀는 길게 수직으로 내려와 어깨 위에서 멎었고 목 밑으로 장식되는 삼도(三道)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이채로운 부분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를 깊숙하게 덮고 있는데, U자형의 옷주름이 앞가슴으로 내려오면서 그 끝자락은 깊숙하게 U자형을 그리면서 다시 위로 올라와 양팔을 걸쳐 동체 뒤편으로 연결되고 있다.

다리는 약간 벌려 직립하였으며 발등과 발가락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수인은 우리나라의 초기 불상에서 나타나는 통인으로서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은 삼국시대 금동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형거신광이면서도 특이하게도 두 개의 타원형이 겹쳐진 이중원형의 거신광이다.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은 광배 및 대좌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예로서 전남지역에서는 최초의 사례라고 알려지고 있다.  (사진, 자료제공: 문화재청, 나주시)            

/정리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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