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생활로 최고에 오른 김홍곤씨

"진솔하고 소박하게 살면 희망이 느껴져요"

  • 입력 2009.04.20 09:44
  • 기자명 김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수오량농공단지에서 오리훈제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솔식품. 96년에 설립할 땐 소ㆍ돼지 부산물을 취급하는 회사였으나 지금은 오리훈제를 전문으로 제조판매하고 있다.

2002년에는 소시지, 햄, 돼지나 오리 훈제 등을 생산하는 등 사업의 다각화를 꾀했으나 2008년부터는 오리훈제만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현재 매출 10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롯데수퍼센터에 주로 납품하고 일반식당이나 임가공업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한솔식품의 생산직 직원은 모두 16명. 가족같은 분위기속에서 화합을 이루며 서로 도우면서 일한다. 그 가운데는 생산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김홍곤 부장이 있다.

97년에 입사했으니 최고참인 셈이다. 한솔식품의 옛 이름인 한솔푸드의 초기멤버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생산직 직원에서 출발하여 10년 만에 회사대표 다음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생산관리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공장장인 셈이다. 직급은 부장이지만 사내에선 엄격하기로 소문났다.

"매우 열심이세요. 꼭 자기 집에서 일하듯 몸 사리지 않고 일하는데 퇴근 후에는 형님, 오빠 같아요"

그의 회사생활을 알 수 있는 박아무씨의 말이다.

그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수줍음을 잘 타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이젠 다르다. 회사에서 명랑하고 쾌활하게 생활하니 덩달아 분위기도 좋아졌다.

61년 신축년 생인 김홍곤씨가 맨 처음부터 직장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영산포 평산동 출신인 그는 영산포중고등학교를 나와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지었다. 영농후계자로 활동하면서 꿈을 키웠다.

그러나 농업은 그에게 많은 아픔을 주고 생활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80년대 모든 농민이 아스팔트 농사를 지을 때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대에 다녀온 후 진로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였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에겐 힘든 선택의 순간이었다.

삼성전자 나주대리점에 입사하는 걸로 농사의 꿈을 접었다. 젊은 시절 희망을 안고 시작한 부농의 꿈은 이제 먼 추억이 되었고 아픈 기억으로만 남았다. 빚도 지고 살림살이도 엉망이 된 것이다.

대리점에서 열심히 4년간 일했지만 나아진 것은 없었다.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대리점과 함께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 때 찾아간 곳이 바로 현재의 한솔식품이다. 여기에서 뼈를 묻어야지 하는 각오로 입사지원을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겪은 어려움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결혼도 했지만 말 못할 많은 아픔을 간직하게 됐다. 두 딸이 그 아픔을 견디게 해주었다.

큰애 미화는 제법 공부를 잘해서 단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녔다. 지금은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단국대 기숙사에서.

처음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제 출제경향도 파악했으니 이를 악물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나가고 있다.

둘째 미연이는 고고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제 밥벌이를 일찌감치 찾아 나선 것이다. 아버지로서 더 공부를 시키고 싶지만 사정을 아는 딸이 직장을 선택한 것이다.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김홍곤씨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조기축구회에 나가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을 변화시키려고 시작한 일이다. 어릴 적엔 축구를 좋아했지만 농사를 지을 땐 취미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젠 그 취미를 살려 성격도 바꾸고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그래서 그는 조기축구회 아리랑을 사랑한다.

올해는 회사도 변할 것이다. 새로운 위생관리 기법인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김홍곤씨가 입사에서 가장 큰 일을 맡은 셈이다. HACCP를 받아야만 명실상부 식품업계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렵고 무거운 짐이 그의 어께에 달려있다. 현장중심의 위생관리가 시스템으로 체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큰 딸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시험에 척 달라붙는 일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홍곤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소신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에게선 시골 냄새가 난다. 소박하고 들풀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마 태어나서 한번도 고향 영산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솔한 그의 삶에 대한 자세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희망이 아닐까.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 해도 충분한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나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