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회3트(아파트,마트,아스팔트)의 밀림을 벗어나 옛 고을의 편안한 숨결을 보듬고 흐르는 영산강과 탁 트인 비단 벌의 태평야(太平野)를 마당삼아 여기가 나의 복지(福地)다 싶어 금성산 언덕배기에 포근히 안긴지도 벌써 10여년이 되었다.
도심에서 느끼지 못했던 생활의 여유와 멋스러움, 만상의 주인 격인 천혜자연의 사물들과 친근하면서 소박한 목가적 전원생활을 소유하고 있다.
예술인들의 체질에서나 잘 어울리는 특성상의 이상향만은 아니다. 일반 사람들의 본디 타고난 성근도 인위적인 고식(姑息)보다는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성질에 더 정감 있게 다가가 길들여지기 쉬운 법이다.
이젠, 셔터문을 여닫는 시간에 구애받을 까닭이 없다.
도회지의 총알택시를 탈 필요도 없다.
그저 한적한 논밭둑길을 터벅터벅 걸어 일터를 오가는 황소마냥 과묵하게 처세하면 되는 것이다. 가정(假定)해서, <대매>선사의 말처럼 여기서 몇 년이나 사느냐고 누가 물으면 산중이라 달력은 없고 그냥 초목이 푸르렀다가 노래지기를 몇 번 보았을 뿐이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러 유학을 가서 지금은 지구 정반대 편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는 한반도산(産) 젊은이가 내게 보내온 E-메일 내용이다.
'행복한 삶은 담백하고 간편 순수한 것이다(Happy life is clear and simple)'
"내가 태어난 고장의 집 가까운 학교를 다니고 거기서 농사를 지으며 이웃집 처녀와 결혼하여 대대로 내려온 집에서 살다가 자식에게 물려주고 집 가까운 언덕에 묻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멀리 전원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아니다.
행복 찾기 제하의 시로, 서양의 <k.부세> '저 산 너머~'에 짝이 되는 동양의선시(禪詩) 하나를 이역만리 젊은이께 답장으로 대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