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 진실

  • 입력 2010.04.05 12:49
  • 기자명 박천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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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쯤 이면, 옛날 전통 농경사회의 촌락에서 노란 개나리꽃밭을 헤집고 노란 병아리 식솔들을 달고 다니는 씨암탉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부양책임을 이행하느라 대숲을 분주하게 드나들며 부리로 땅바닥을 그토록 수 없이 콕콕 찍고 다녔을 것이다.

토종닭이여야 병아리를 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한번 그런 옛 정취를 눈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작년 봄에 5일장에서 수 병아리 한 마리, 암 병아리 두 마리를 샀다.

하룻밤을 지나자 꽃샘추위가 그만, 암놈 한 마리를 가져가 버렸다.

다음 장날, 결원이 된 한 녀석을 다시 들여왔다. 그런데 세 마리의 몸뚱이와 생김새가 점점 자라면서 각기 달랐다.

알고 본즉 뒷날 보결식구가 된 녀석만 토종 닭 이었고 먼저 들여 온 녀석들은 토종이 아니었다.

닭전머리 아주머니가 나를 속인 것이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한자어이다.

겉으로는 그것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아니거나 전혀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병아리 신분(?)인데 외관상으로 토종닭인지 아닌지를 난들 어떻게 분간 할 수 있겠는가? 키워봐야 알제!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속여야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방식,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반쪽 거짓은 완전한 거짓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파륜적(破倫的) 기만과 허세로 일을 숨겼다가 결국 들통이 나는 날조, 사기 사건들이 만연하는 세태 속에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불신(不信)의 풍자곡(諷刺曲)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고 진실과 정의와 진리는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며 푸릇푸릇 살아 숨 쉬는 생동 체였던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며 온갖 선(善)을 보듬은 그 어떤 종파나 학파보다도 더 먼저 이 세상에 태동하였으리라.

거짓은 순간의 모면에 불과하다. 거짓은 위대한 진실 앞에 한갓 무모한 짓이다.

우리 주위의 진위(眞僞)를 가름하고 밝히는 데는 무엇보다도 심안(心眼)의 명료함과 얼음같이 냉철한 판단으로 용의주도하게 만나는 상대를 조처해 나가야 하겠다.

올 봄엔 그 녀석으로부터 한 달 동안 알을 품었다가 줄탁(?啄)하는 날, 토종닭인지 아닌지 흑과 백으로 확연하게 분별하는 미덕은 언제나 변치 않는 진실편인 것 이다. 진실은 반듯이 어느 누구에게나 소통한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고 싶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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