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에 대하여

  • 입력 2010.08.30 10:28
  • 기자명 박천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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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라는 의미는 한자로 머물 처(處), 더울 서(暑)자를 써서 여름이 머물러 더위가 물러간다는 뜻이다.

입추를 지나 처서로 가는 이 맘 때가 되면 논에 벼가 자라는 소리에 개란 녀석이 짖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벼가 빨리 자란다는 말이다.

옛 문헌에 보면 '처서가 되면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천지가 쓸쓸 해지며 벼가 익기 시작한다'고 적혀 있다.

여름장마에 젖은 곡식은 바람에 쐬고 옷, 이부자리나 책 등을 말리며 이 절기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고 하였으며 극성을 부리던 해충들이 사라지고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농가월령가에 있는 7월령에도 '늦더위가 있다 해도 계절의 바뀜을 속일 소냐? ~중략~ 농부들아 우리 일 얼마나 남았으며 어떻게 될까 마음을 놓지 말라. 아직도 멀고멀다. 꼴 거두고, 벼논에 김매고 피 고르기, 낫 갈아 두렁 깎기, 산소에 벌초하기' 등을 노래하고 있다.

여름철 무더위를 저자거리가 화로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시정여재홍로중/市井如在紅爐中)라는 문구가 있다.

한여름의 대 자연도 복더위에 헐떡거리며 그 속살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밖으로 열어 젖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방된 자연의 품속으로 우리는 녹음방초의 그늘로, 계곡으로, 바다로 쫓기듯이 도망가야만 했던 피서의 한 철을 보내야 했다.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혹독한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서서히 물러 설 채비를 하는가 보다.

요즘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살결을 스쳐 지나간다.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여 따르면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순천리즉자무불리/順天理卽自無不利, 맹자)

즉 황도운행으로 하여금 계절과 시공의 변환에 따라서 우리의 생활도 모든 사물이 순환하는 이치에 상응해 나가면 자연히 각자의 삶에 대한 만족감도 함께 더하여 나간다는 말이다.

강구연월(康衢煙月)의 조화로움에 절기는 입추처서,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가실'이라는 미닫이 창문을 살며시 열어보자.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거쳐 성하의 여름을 나는 동안 모진 비바람과 온갖 병충해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주인장 머슴과의 굳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달디 단 열매를 맺기 위해 쓰디 쓴 맛에 부대끼면서 그렇게 인내하며 보내야만 했던 것일까?

도연명의 귀전원거에 나오는 '다만 농사가 틀림없기를 원할 뿐(사원무위/使願無違'이라는 소망처럼, 금년 봄에 씨 뿌려 놓고 나름대로 소기(所期)의 알곡을 셈하며 자연의 은혜로움으로 오곡백과가 탱탱하게 영글어 가는 이 가을에 우리네 인생살이도 지금 아픈 만큼 성숙하듯이 함께 탱탱하게 여물어 가는 삶이였으면 좋겠다.

시화년풍(時和年豊)은세상이 평화롭고 풍년이 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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