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예찬 (禮讚)

  • 입력 2011.12.15 17:24
  • 기자명 이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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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군자 중에 은일화(隱逸花)라는 별칭을 지닌 국화를 유난히 좋아한다.

매년 국화가 피는 철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꽃이 앙증스럽다거나 특색이 있는 국화를 보면 한두 뿌리를 꼭 손에 쥐고 와서 마당가에 심어놔야 즉성이 풀리는 성미 덕택에 울긋불긋 오색을 다 갖춰 놓았다.

지금 한창 형형색색으로 곱게 단장하고 저마다 맵시를 뽐내며 모두들 마당에 나와 꽃 잔치에 함께 참가하고 있다.

음식이 제철음식이여야 맛있듯이, 꽃도 제철에 피는 꽃 이여야 향기가 더하며 산뜻하다.

또 아무래도 국화꽃의 정취는 담장의 성긴 울타리에 기대어 소담스럽게 피어 있거나, 늦가을 찬비를 맞으며 떨고 서 있는 자연속의 모습이라야 운치가 있는 것이지, 테그닉클한 사람의 지배를 받아 인위적으로 이리 비틀고 저리 구부려 놓고 억지로 미소 짓게 하는 그 속에서 무슨 국화의 향연이 있겠는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가 있겠는가?

국화하면 얼른 <미당>의 '국화 옆에서'라는 불후의 명작이 생각 날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 또 그렇게 울부짖었다.

비로소 모든 꽃들이 다 피었다가 지고 난 뒤늦게 무서리를 맞고 핀 노오란 꽃잎을 보려고 간밤엔 잠도 오지 않았다. 캬!

다음은 중국 진나라 때 전원시인 <도연명>이래로 국화는 시인묵객들로 하여금 시상의 소재와 서정적 대상물로 삼아 나왔다.

'뜰 안 오솔길은 잡초가 있으나 소나무와 국화가 자녀들과 함께 나를 반긴다.' <귀거래사>에 국화에 대한 구절이 나오며, 유명한 시구로 '동쪽 사립가의 국화를 따다가 멍하니 남산을 바라보네.[채국동리하,유연견남산/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가 있다.

세 번째로 적고 싶은 조목은 조선조 때 <이정보>의 옛시조이다.

서리 내리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고상히 피어 있는 국화의 굳은 절개를 노래하고 있다.

국화야 너는 무슨 일로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었는고?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오상고절! 그 기품의 진면목을 과시라도 하는 걸까? 초가을 일찍 핀 녀석보다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지난 뒤 간밤에 무서리를 호되게 맞으며 핀 꽃들의 빛깔이 확연히 화사하면서도 강인해 보인다.그래서 옛 부터 고매(高邁)한 군자(君子)의 품격을 온갖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늦가을에야 홀로 피는 국화에 견주어 나왔다.

이렇듯 서리를 거만하게 비웃기라도하며 피는 저문 이 가을 국화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우리주위 현실들의 형편이 힘들어도 궁익견[窮益堅;곤궁할수록 더욱 지조를 굳게 지킴]의 자세로 굳건하게 심신을 단련해 나갔으면 한다. <竹>



박 천 호 기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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