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로 산다는 것

  • 입력 2011.12.15 19:04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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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는 죄인일까요?

'주부'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상한선도 하한선도 없는 아주 맹랑한 직업입니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는 아주 붙박이 직장이지요. 승진도 없고 휴가도 없고 보너스도 없습니다. 보수요? 굳이 챙기자면 가족들의 사랑과 가족이 올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고, 보수입니다.

그런데 대접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타박 일색입니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거나 설거지가 안 되어 있을 때 또 그날 입어야 할 옷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을 때 '주부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모든 가족이 정색하며 따집니다.

'주부'는 모든 식구에게 영원히 갚을 길 없는 빚진 죄인입니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놀다가 무릎이 깨져도 도대체 집에서 하는 일이 뭐기에 아이가 이 모양이냐고 따집니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다든지, 친구들과 어울려 귀가가 늦어지면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모양이냐고 호통을 칩니다. 주부가 참다 참다 하루 이틀 몸져눕기라도 하면 '집에서 뭐 한 게 있다고 아프냐?'고 한마디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비수가 되어 주부의 가슴팍에 꽂혀 좀체 빠지지 않습니다.

아침이면 남편과 자식들은 집안 곳곳에 뱀 허물 벗 듯 훌렁훌렁 옷들을 벗어놓고 뛰어나갑니다.

아내와 엄마인 주부는 짜증을 받아내는 바구니입니다. 이것저것 구분 없이 집어던져진 짜증을 가득안고 종일 삭히느라 가슴이 아립니다.

주부는 완전한 사랑 제조기가 아닙니다. 함량이 특대인 전천후 사랑제조기는 더욱 아닙니다. 퍼내고 퍼내면 더러 마르기도 하는 샘. 제 몸 다 부서질 때까지 일하고 나면 어느 한순간 멈춰버리고 마는 여리디 여린 사랑 제조기일 뿐입니다.

주부는 완전한 스펀지가 아닙니다. 함량이 특대인 스펀지는 더욱 아닙니다. 일정량의 물을 빨아들이고 나면 수명이 다하듯 가족들의 짜증과 불평을 있는 대로 받다보면 멈춰버리는 한정된 용량의 스펀지일 뿐입니다.

때로 주부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주부도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주부도 사표를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를 혼자 낳은 것도 아니고 혼자 기를 수도 없습니다. 특히 사내아이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도 있습니다. 주부 혼자 모든 것을 다 해내리라는 기대는 접어주세요.

그런 주부를 위해서 위로와 격려, 사랑의 응원을 보내 주세요. 주부는 가족의 배려와 사랑을 먹고 삽니다.



황경연 : 아동학 및 가족상담학 전공, 동화작가, 부모 및 부부 코치(KAC), 기독타임즈 가정칼럼리스트, 종남초등학교 보육교사





황경연

기독타임즈 가정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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