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국회' 고질병을 치유하려면

  • 입력 2011.12.15 19:41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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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이 축산농가와 국가 경제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다. 구제역은 잊을만하면 다시 창궐하는 고질병이다. 예방백신이 있긴 하지만 그럴려면 모든 가축들에게 접종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에 비해 효과나 소득이 높질 않다고 한다. 결국 예방에 최선을 두는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가 치유하지 못하는 고질병이 하나 더 있다. 다른 점은 환자가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도 아주 번듯한 사람들,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이 걸린 병명은 '난장판 국회병'이다. 내년도 예산안 국회통과과정에서 보여준 여야 국회의원들의 추태는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고질병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장판 국회병의 전염성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아직 국회의원 멱살잡이를 흉내낸 청소년들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통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 사이에선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 난장판에 가담한 국회의원들 상당수는 과거 그런 병에 걸린 적이 없던 초선의원들이다. 18대 국회에서 이들의 비율은 전체 299명의 의원 중 44.8%에 달한다. 언제 배웠는지 몸싸움 기술이 선배의원들에 뒤지질 않는다.

국회 난장판을 보고 혀를 차는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 자질을 탓한다. 그런데 이들 경력을 보면 대부분 국민 평균치 이상의 학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국민 평균치에 못 미치는 것이 있다면 병력(兵歷)이다. 그렇다면 유능하고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질타를 받는 난장판에 적극 가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선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행동을 해야 재선이 된다? 언뜻 들으면 말이 안된다.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의 당선에 국민들보다 훨씬 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다시 금뱃지를 달려면 유권자보다 먼저 정당 고위간부의 눈에 들어야 한다. 소속정당의 보스 혹은 당직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국민들이 선택할 후보자 명단에 아예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거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일종의 브랜드이다. 국민들은 대표자를 선출해 국가통치를 위임해야 하는데 적절한 인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 선택을 도와주는 시스템으로 활용되는 것이 정당제도이다. 상품으로 치자면 소비자의 선택을 도와주는 일종의 브랜드인 것이다. 정치적 브랜드 가치가 낮은 소수정당이나 무소속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설사 당선된다 하더라도 다수당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의 역할이 결정적이지만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선거가 임박해서 반짝 생긴다. 지역별로 정당후보자를 뽑을 때이다. 국민공천제, 국민경선제 등 보다 민주화된 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해당지역의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은 소위 공천권을 갖는 정당보스들이 행사한다. 따라서 국회의원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지역주민들보다 정당보스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정당보스들이 돌격대로 호출하면 싫어도 나와야 하는 것이다.

난장판 국회는 정당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해서 생기는 병리현상이다. 따라서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자연 치유된다. 이러한 정당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지역사회이다. 정당의 지역구가 해당 지역의 정치현안을 수렴하고 적절한 대표자를 후보자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절차는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정당보스가 좌지우지하는 공천제가 사라지고 지역주민들이 정당후보 선출단계에서부터 권한을 행사한다면 한국 정치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고 난장판 국회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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