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한계를 극복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자!

  • 입력 2011.12.15 20:03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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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애써 외면하고자할 때 어제의 태양이 내일의 태양으로 다시 떠오를 텐데 왜들 부산을 떠느냐고 힐난하기도하고 누가 달력을 만들어서 삶들을 번뇌케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사실 시간은 사람들의 푸념처럼 뚜렷한 한계가 없이 억겁의 세월동안 흘러오다 사람들이 달과 해를 기준삼아 시간과 날 그리고 달과 해를만들고 스스로 그 기준에 얽매이고 있는 것이다.

시간나누기의 유래를 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달의 공전주기인 평균 29.53059일을 기준으로 삼아 달력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태음력이다. 그러나 태음력에 따른 1년은 354.36일밖에 되지 않아 태양력의 1년인 365.24일보다 11.25일이 짧아 날짜와 계절이 일치하지 않는 불합리 한 점이 발생했다. 이를 해소하기위하여 로마의 시이저는 4년마다 달력에 하루를 더 넣어서 그 해는 1년을 366일로 정함으로써 계절과 달력을 일치시켰으나 이는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기초로 한 계산이여서 여전히 달력과 계절의 차이가 발생했다. 1582년 로마 법왕 그레고리오 8세는 400년마다 윤년을 3차례 없애고 세기의 마지막 해 중에서 처음 2개의 수가 4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 없이 나누어지면 윤년으로 하고 그 밖의 해는 평년으로 하여 계절과 달력과의 차이를 거의 일치시켜 오늘날 전 세계인의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구분이 있었다기보다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경계를 만들고 제한했지만 반항 없이 자연스럽게 수용함으로써 정착이 된 것이다. 시간나누기와 사람들의 수용이라는 문제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사람들은 왜 속박과 굴레일 수 밖에 없는 시간의 한계를 스스로 용인하고 수용했을까! 이는 시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 한계 안에서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강한의지의 발로가 아니였을까! 한계안에 뛰어들어서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의지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결정인가!

시간은 속박과 한계로 인간을 억압하지만 이 억압이 있음으로써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있었고 이러한 싸움이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도전과 응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 땅의 찬란한 역사의 산물은 영겁의 시간을 체념하지 않고 극복한 승리의 산물들이다.

신묘년 새해가 새로운 극복의 대상이 되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한계안에 안주하지 말고 한계를 극복하여 새로운 역사를 남기기 위해 분투하자!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판단하면 난마처럼 얽혀진 세상사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게 보이는가! 항상 자기의 세대는 힘들고 어려웠다고 회상할 뿐 쉽고 살만했노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는 비록 역할과 성과의 크고 작음은 있었을지 몰라도 패배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각자가 제 위치에서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역사는 순행하고 성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역사의 주역은 이 땅의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내자!





이재창

고구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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