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의

삶의 향기

원형 탈모의 기억

  • 입력 2011.12.15 20:03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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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지인들은 만날 때마다 내 머리가 배경음악처럼 짧은 화두가 된다.

너무 짧아 댕강해서 본연의 지적인 멋이 달아난다는 둥, 커트 머리에서 살짝만 길어도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야위어 보인다는 둥, 무슨 일이 있는지 얼굴이 몹시 됐다는 둥 따지고 보면 시시콜콜한 관심인데도 들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세워지는 걸 보면 나도 아직 평정의 나이에 이르지 않은 여인인가 보다.

오늘도 오랜만에 자극받은 머리를 부둥켜안고 미용실을 찾았는데 커트를 하던 미용실 '언니'가 움찔하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아~ 뒤에 원형 탈모 생겼지?"

"어머~ 알고 계셨어요? 이건 신경 쓰면 더 스트레스받으니까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거울 속에 나를 힐끔 살핀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뒤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의 달(나는 딸을 '달'이라 부른다. 차오르는 모습도 깊고 얇게 사그라지는 모습도 깊은 달의 모습은 내 딸이 가진 '마음의 깊이'와 닮았기 때문이다.)이 "엄마! 세상에 얼마나 힘드시기에 원형 탈모가 생겼네요."

내게 늘 달이 돼 준 내 딸은 엄마가 다문화 가정 방문지도교사로 시골 길을 늦게까지 운전하고 다니는 것 하며, 그네들에게 내밀 수 있는 손길이 한계에 부딪게 될 때마다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안타까이 지켜보는 동무였다.

팔월은 오후 여섯 시가 되어도 해가 들어가기 싫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겨울은 빨리 감춰버린 해 자락이 없어 어둑어둑해진 시골 길을 헤매고 다니는 길 치 엄마를 항상 걱정하는 나의 달이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 뽑힌 것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우리 국민이 되어 있는 그들과 함께 멀리 가는 법을 알려준 다문화 가정과의 인연은, 내 삶에 또 다른 동그라미를 제시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두 달도 안 돼 소통조차 어려운 베트남 소녀 호아가 장애인 복직관에 나가 뭘 배우기도 하고,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훈훈한 이야기! 만나서 손짓 발짓으로 얘기했던 그 호아 가 이젠 하트 찍힌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한다. 어느 날은 베트남을 다녀왔다고 검정 손지갑을 사와 수줍은 미소로 내밀던 그 맑은 눈동자!

찹쌀 농사를 처음 지었다고 내 차에 찹쌀 20Kg을 덥석 실어주며 겸연쩍어하던 몽골친구 아마르자르칼! 농사일에 너무 바빠 정신없는 아 마르자르 칼을 위해 홍삼 팩을 주섬주섬 싸주며 전해달라던 바타올트마!

원형탈모는 이천십 년에 남겨진 나의 사랑 자국인 것을....



한진

한국문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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