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 칼 럼

화를 제대로 내는 법

  • 입력 2011.12.16 11:53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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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를 출산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이십 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때 나는 만삭이 된 몸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임신 중독이었는지 체중은 늘고 온 몸은 잔뜩 부어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한 상태였지요.

이사하기 하루 전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웬만한 것은 모두 정리가 되었고 남편의 손길이 필요한 것들만 남겨둔 채 퇴근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늦는다는 전화 한 통 없이 자정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삭인 아내와 연로하신 장모님이 이삿짐을 싸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자정이 한참 지나서야 남편은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곧 바로 쏟아져 나오는 원망과 불평.

"여태 뭘 하다 이제야 오는 거예요? 내일 이사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편하던가요? 무거운 몸으로 이사 준비하는 내가 안쓰럽지도 않아요?"

남편은 느닷없는 속사포 같은 내 말에 고함을 질렀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뭐 놀다오는 줄 알아?"

나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 상황에서 고함을 치다니……. 너무나 화가 나서 눈물만 흐를 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니 갑자기 남편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식사를 하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이제 당신이 할 일만 남았는데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오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어요? 몸이 무거우니 힘은 들지, 무엇보다도 친정엄마 보기가 민망해서 당신을 본 순간 불평이 절로 나왔어요."

그러자 남편은 말했습니다.

"어젯밤 일은 미안해요. 이렇게 좋은 말로 하니 얼마나 좋아요. 사정을 자세히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따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만 고함을 치고 말았소. 얼른 아침 먹고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오기 전에 짐을 마저 꾸립시다."

여보! 지금도 당신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한다거나 경우에 합당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면 화가 납니다.

그래서 분명 피치 못할 일이 있었을 텐데도 내 입장만 생각하고서 다짜고짜 따집니다. 그런 해결방법은 분명 일을 더 꼬이게 하고 좋은 관계마저도 악화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앞으로는 같은 말이라도 좀 더 부드럽게 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황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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