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삼의 나주이야기

  • 입력 2011.12.1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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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향에서 큰 욕을 당한 박영효



그 뒤에 또, 이 분이 와요. 박영효씨가. 온디 어디로 오냐 허면, 저리 저, 영산포 가는, 저 반남 학교 있는 고리 질 안 있소잉? 거그서 저리 저그, 박씨들 선산을 넘어가는디 고개 안 있소잉? 고개를 그냥넘어가요잉. 그러면 학교, 그 밑이 말고 신기촌이란 마을이 있어라우. 마을 앞에 거가 고리 질이 있었거던. 이트리로. 근께 거그 인자 마을 앞에가 질 있는디, 옛적 질로 그대로 질이 났어요, 지금. 신작로가. 도로가. 고리 오는디, 말을 타고 와요. 그런디, 그 앞에 논에서 보리 갈라고 쟁기질 허는 사람이 있었든갑디다. 그런께는 그 사람을 불렀어. '말 잘 하고 뺨 맞는 적 없드'라고, 좋게 불렀으먼 뒤에 문제가 없을 것인디,

"아이, 저기 쟁기질 허는 놈아. 이리 좀 오니라"그러거던. 갔어. 가가꼬는,

"왜 부리요?"그런께,

"여그서 반남 박씨 시조산은 얼마나 남았냐?"그런께 인자 멫 번 댕였어도 그렇게 물었든갑디다. 그런께는, "요리요리 여그 고개 넘어서 얼마 안 남었다"고. 그런께 돌아갈 것 아니요? 간께는, 어째 짝대기를 가꼬 왔던가 짝대기로 말 똥구녕을 쿡 쑤셨버렀어.

그런께 말이 빔이 뛰어버릴 것이요? 그런께는 혼이 나버렸제, 박영효씨가 혼이 나버렀어. 아이, 이 놈헌테 큰 욕을 봤거던. 그런께 가가꼬는, 그 재각에 들어가가꼬는,

"그 신기촌 앞에서, 이러이러헌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생였는디, 그 이런디. 이렇게 해서 질을 좀 물은께는 와가꼬는 이렇게 이렇게 당했다. 그러니 그 놈 잡아오니라" 하인 놈을 시킨께는, 아 인저 들어본께. 나석진이라고, 우리 나가, 나가여라우. 그런디, 서른 살 먹도록 장가를 안 갔드라우. 못 갔드라우. 안 간게 아니라 못 갔어. 가난해서. 그런디 말허자먼 고약해. 누가 그 사람 건들었다 큰 일이 나. 그래 그 분이거던, 들어본께. 그 분 아니먼 그렇게까장 헐 수도 없고, 누가, 감히.

"하이, 그 도련님 같으먼 못 잡으러 간다"고,

"차라리 우릴 죽여도라"고. 하인 놈들이 막 빌어.

"차라리, 우린 못 잡으러간께, 잡으러 못 간께, 차라리 우릴 죽여도라"고. 그래서 잡으러 못 가고, 못했어요. 그런 참말로 당돌허고 참 야무지고 그런 분이 있었는디. 그 분이 누구냐 허먼. 먼저 이애기헌, 그 사돈간에 송사헌 디. 암사돈, 수사돈, 그 사람이였어라.

(4) 반남면이 나주에 있게 된 사연



반남면이 면적이 적어요. 그러고 다른 면, 그 큰 면보덤 면적이 그 반첨이나 밖에 안 되아요. 그러니까 여그 지형이, 영암 땅이 동쪽으로 요그까정 쑥 들어오고. 또 서쪽에서 또 요리 영암 땅이 쑥 들어오고, 그래가꼬는 저, 나주 반남 땅이 영암 땅 속으로 이렇게 쑤욱 들어가가꼬 있어요.

그런디 인저 나주는 크제, 영암은 적제, 군이. 지역이, 말허자먼 지방이. 그러니까 왜정 때부텀, 반남을 영암으로 붙여부를라고, 행정적으로 많이 그런 일이 중복되아서 그렇게 헐라고 그랬어요. 영암으로 붙여부를라고. 나주는 크고 영암은 적으니까. 그러먼 이 반남면이 없어져부러. 면 이름이 없어져부러요. 반남이란 면 이름이 없어져부러.

그러니까, 박씨들, 반남 박씨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께. 아, 그렇게, 만약에 영암으로 붙여부르먼, 자기 본관이 없어지게 생겼거던. '그래, 안 되겄다' 그런디, 이것을 반대운동을 해야 쓰겄다 허는디. 그 때 누가 있었냐 허먼, 박영효. 금릉이라고 박영효씨가 있었어요. 그, 그 분이 그 때 살어있을 판이여. 그 분헌테 가서 이애기를 했어요.

"이렇게 되어서 나주 반남을 영암으로 인자 그렇게 행정구역을 이렇게 개혁헐라고 허니, 그러먼 우리 반남 박가의 관향이 없어져부른다.

그러니 그렇게 못허겄게 해도라"그런께. 그 때 여그 반남면장이 정순규씨란 분이 가서, 그 말을 허러 간께,

"늙어서 말헐 기운도 별로 없고, 그러니까. 온 내력을 서면으로 적어놓고 가라"고 그러드라우. 그런께 그렇게 적어놓고 왔어요. 그래 보고는, 총독부로 전화 한 통화 해부린께 그래서 그렇게 되아부렀제. 그래서 이 반남면이 이렇게 안 없어지고 있었어요.

그 뒤에는 인자 해방된 뒤에는, 여그 반남서, 영암 땅이 여그로 들어오고, 시종 땅이 또. 영암군 시종면이 요리 들어오고, 신북면, 영암 신북면 땅이 여그까정 왔거던이라우. 요 놈을 띠어다가 반남 땅에 붙일라고, 그런 운동을 허는디, 거그 지방 사람들이, 말허자면 시종이나 신북 요쪽의 사람이 반남으로 붙이기를 원했어요. 그래가꼬 진정서를 도장까지 다 받아가꼬 이렇게 운동을 허는디, 참 영암 사람들이 안 뺏길라고, 저기 그 저쪽 사람들이 여그 사람들을 와가꼬 그냥 막 테러 행동을 허고 기냥 막 그래가꼬는 여러 가지 복잡헌 일이 있었어라우. 그러다가 말어부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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