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삼옹의 나주이야기

  • 입력 2011.12.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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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주 향교와 똑같이 지은 서울의 성균관



나주 향교가, 지슨 제가, 차암 오래 되았다오. 한 오륙백 년 되았는가 봅대예. 오륙백 년 되았는디, 임진왜란이 났소잉. 임진왜란이 났는디, 나주 향교는 그대로 유지되았어라우. 일본, 일본 놈들이 불을 안 질러부르고. 그런께 그 왜병이, 이 나주까정 안 왔든가 몰라요잉? 그거까정은 모른디.

그런디 서울, 성균관이 불, 불 타부렀어요. 그 때, 저 왜병들이 불질러버렸어요. 그랬는디 성균관을 새로 짓을란디, 집, 말허자면 도면을 잉, 그 설계를 빼야 쓴디, 나주 향교를 와서 설계를 빼갔드라우. 나주 와서. 그렇게 해서 인자 성균관도 짓고.

그런께 성균관, 성균관도, 나주 행교 집허고 똑같이 지었지라잉. 여그 생, 여그 구조대로, 설계를 빼서 짓어가.



(2) 공자님 고향의 흙을 벽에 발라 지은 나주향교



그런디 나주 행교가 특이헌 디가 한 가지 있어라우. 한편쪽 벽에 가서 벽의 흙이, 공자님이 중국 산동서, 그서 안 낳소? 산동성. 공자님 낳은 면, 거그 낳은 그, 터. 동네까정 찾아가가꼬 거그 흙을 파다가 한편 쪽 벽을 볼랐어라우. 그런께 중국 흙이 지금, 나주 행교에 한편 쪽에 가서 벽에 볼라져가꼬 있어요.

어느 쪽 면인지 내가 확실히 모른디, 가서 물어보먼 알 것이요. 행교 가서.

나도 어째서 알았냐 허면. 지금으로 한 십구 년 전, 한 이십 년 되았소. 그 때 내가 나주 행교를 댕였어라우. 댕였는디. 그 때, 장의, 인자 행교 장의로 댕인디. 그 장의가, 한 번 되먼 삼 년간인가? 그래가꼬 나중에 또 다시 인자 개편허고 그러는디. 그 때, 그 이애기를 들었어라. 그 행교에서. 그 벡을 가르칩디다. 그런께 그 때, 내가 지금 생각에는, 서쪽편 벽인 것 같소. 서쪽 편. 그 집으로 해서, 서쪽 편. 그래 내가 그거 알어.

가서 아실라먼, 가서 인자 흙 봐서는 모르고. 인자 거그 행교 가서 인자 물어보먼 알어요. 행교 가 사람 있은께. 그래 인자 어디 흙이, 그런 흙이 있냐고? 또 내 이애기를 인자, 말씀허먼 또 사실 그런가 아닌가도 알 것이고 그런디, 나는 분명히 인자 그 행교에서 들은 이애기닌까. 그래서, 그 산동성 흙이 여그 와 볼라져가꼬 있어요. 나주 행교에 가.

거그가, 공자님 태어난, 산동성 거그, 그 면까정 거그까정 찾어가서 좌우간, 공자님 어디서 태어나신지 알 것 아니요? 그런께 거그서 흙을 가지고 와, 갖다가, 한편 쪽 벽을 볼랐어요. 그 때는 가르치더라. 젓 저그가, 저그가, 그 중국서 가져온 흙 보른 벽이라고. 그것까정 가르쳐줍디다.

그런께 행교에, 행교에 늘 댕여도, 그런 말을 듣고 물어본다던가, 그러 안 허먼 그런 이애기를잉, 행교 짓은 역사를, 역사랄까잉. 내력을, 그 이애기를 자세히 해준다거나 허먼 쓴디, 안 허먼 모르지라잉? 몰라서도 못허고, 알아서도 안 해주먼 모르고.

응, 그런디. 그런 이애기를 허드란 말이요. 그래서 내가 알어라, 그러 안 허먼 몰라. 나도. 그라고 행교 댕였기 때문에 알게 되았어라. 그것도 뭣, 진짜 문화재 아니요잉?

중국 중국서, 공자님 모시는 행교 집이다가, 공자님 태어난 땅의 흙을 갖다가 벽에 볼랐은께. 다를 볼른 것이 아니여, 한편 쪽 쪼깐 볼랐어요, 한편 쪽만.



(3) 연안 이씨를 몰라본 나주 향교의 중노배



이건 나주 행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허는디요이.

어떤 중노배 한나가 행교 출입을 허게 되았든가 봅디다. 옛날 그 중노배 그렇게, 양반 거시기, 계급 시대에는 중노배 그, 그런 사람들은 행교에 출입 못하요.

그런디 그 사람이 어쩌다가, 어츠게 해서 그 향교를 인자 나가게 되았어. 요새 인자, 행교, 그 댕이는 사람 보고 장의, 장의라고 그러는디, 그 때는 뭐이라고 했는지 모르겄소만, 장의로, 요새로 허먼 장의로 뽑혀가꼬, 향교를 인자 나댕인디.

한번은 향교를 간께, 거그 가서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 그래 그 사람허고 인사를 했어. 인사를 떡 인자 성명을, 통성명을 헐 것 아니요이?

그런디 처음 보는 사람이 뭐라헌고이는, "내 성 이가요." 그런께, 이가요 그런께, "어디 이씨요?"그런께, "연안 이씨요." 그랬어. 그런께는, "어, 그래요."

그러고 말었으먼 쓴디, "아, 연안 이씨도 다 있는가?" 이래 놨어.

그런께 그 연안 이씨가 듣고는, "이런 상놈이, 여그가 어디라고 요런 상놈이 향교를 왔다."고 말이여.

"'연안 이씨도 있는가?' 응, 이거 상놈 아니냐?"고, "담박에 묶어내라." 고 막, 호령을 해.

아, 연안 이씨가 아조 국중, 이조시대에 국중 아조 대양반인디. 언제 한 번 연안 이씨 이얘기 안 합디여? 지일 끄트머리 가서, 연안 이씨가 이리 손구락 꼽으먼서 내가 여, 여.

"이런 상놈이 어디가, 상놈이 행교를 와서, 행교 더럽힌다."고, "연안 이씨가 어디가 있냐?고, 연안 이씨 있냐고 헌다 허고, 불호령이 났어.

아, 그런께 옆에 사람들이, 아 참, 어쩔지를 몰라. 아, 크은 실례를 했지요잉. 그런께 기냥, 모도 다아, 뭇대로 나무라제.

"뭐이, 어디가 연안 이씨를 몰라보고 그런, 그런 소리를 허고 그래 쓴다냐?"고 말이여.

아, 그래가꼬는 기냥, 그 사람이, 연안 이씨가 긋 인자, 그 화가 나는 것으로 허먼, 그 행교를 못 댕기게 생겼어.

"아, 저런 놈. 저런 놈의, 저 중노배, 저런 놈을 어디 행교에다가 댕이겄게 허냐?"고, 못 오게 허먼 못 댕인단 말이요.

그런디, 그런께는, 그 옆에 사람들이, 그 중노배 그 사람 보고, "저 연안 이씨, 저 분, 참 화를 풀게 헐라먼, 니가 걸게 한 탕을 내라. 되야지 잡고." 그래 가지고, 되야지 잡고 크게 장만해가꼬 행교에다가 참말로 한 잔치를 허고, 했드라우.

말 한 자리 잘못 해가꼬, 연안 이씨도 있다냐? 그랬다가. 그래 가지고 행교를 댕겼다는, 그런 이애기가 있어요.

그런께 지금도 어디 통성명 허먼 그 희성 안 있소? 잘 못들은 성. 그런 성 들을 때 그런 소리 허면 절대 못써라우. 발써 자기 자신이 말허자면, 무식허다든가, 능력이 없는 사람이여라우.

처음 들어도 "아, 그러시냐?"고 이렇게 해야제.

"아, 그런 성도 있냐?"고 말이요잉, 그런 성 안 있소? 못들은 성잉, 절대 그런 말 하면 못써요.

(나종삼 옹의 딸 : 근디, 그 말 한 사람도 보통으로 하는 말이요. 들은 사람이 그렇게 들어서 그렇제.)

아, 고 말도 맞지만, 절대 허는 말이 아니여. 그, 지가 모지란 사람이여. 지가 출입이 적고 문견이 없은께 모른 소리제. 어째 지가 출입이 넉넉허고 문견이 있다 허먼 모를 수가 있소? 그런께 절대 그런 소리허믄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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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향교 외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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