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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분석에 대한 연구는거주민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간분석을 위한 발걸음
김준 기자  |  najuk2010@naju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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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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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누군가의 오래된 이야기이다.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풀기 시작하면 사료발굴 작업이 되기도 하고, 잘 가공되어진 자원은 거대한 콘텐츠가 되어 공간을 부각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진 공간의 힘은 누군가의 발길을 머무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거주민의 삶과 버무려 진다.



창의적 체험활동을 위해 모인 금성고 역사동아리친구들에 의해 선창거리에 대한 거주민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사학과 혹은 인류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우리 지역 청소년들에게 인터뷰 조사방법론을 교육하고 거주민과 직접 대화하게 했다. 공간을 걷고 육안으로 확인했던 지난 시간의 답사가 일방적인 정보전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이번 답사에서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감성적인 방식의 접근을 통해 곳곳에 숨겨진 공간의 역사를 직접 찾는 활동을 하였다.



보물찾기1.

화교학교와 중국인의 흔적(금성고1ㆍ서재홍)

목사골 탐험대를 두 번째 참여 하고난 뒤의 소감은 처음으로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주민들이 거리낌 없이 답변해주시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조가 찾아야 할 미션은 중국인학교(화교학교)의 역사였다.

화교 앞을 지나는 할머니 한 분께 무작정 인터뷰를 요청 드렸다. 1900년대 초에 영산포구를 통해 중국인들이 물건을 실어 나르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배가 다녔고 영산포를 통해 중국의 물건들을 들여와 팔던 상인들이 10여 가구는 되었을 거라고 하셨다. 영산포에 중국인들이 살만큼 포구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일제의 수탈이 활발할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였다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왜 영산포에 자리를 잡았는지에 대해 이제는 명확히 알 수 있을 듯하다. 현재도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한 가구가 있다고 하셨다. 그곳을 찾아 갔으나 셔터가 굳게 닫힌 그 집 앞을 서성이다 돌아왔다.

혹시나 중국인을 만난다면 나는 그가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먼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와서 장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그의 용기와 당시의 심경을 묻고 싶다.



보물찾기2.

영산포의 근대(금성고2ㆍ김락현)

우리의 목표는 영산포 선창거리에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영산포의 변화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 조원들은 처음으로 해보는 인터뷰가 무척 어색했다. 배웠던 것처럼 인터뷰의 질문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또한 어르신들은 쉽게 인터뷰에 응해 주시지 않았다. 조금 힘들게 시작한 가운데..

백발의 어르신 한분께 어렵사리 인터뷰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영산포에서 거주하신지는 약 63년가량 되셨다고 한다. 어르신은 처음으로 듣는 영산포구의 역사 등에 대해 말씀하셨다. 1960년 까지도 영산포는 나주보다 번화하던 곳으로 영산강 하구둑을 막기 전까지 수심이 깊어 1t가량의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영산포 5일 시장이 원래는 지금의 영산포 노인복지회관과 주민복지센터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암, 목포, 신북, 봉황등지에서 찾아올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시장은 하구둑이 막히면서 점점 규모가 줄었다고 한다. 지금의 풍물시장 위치로 옮기기 전까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다니셨다는 김은선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어르신께 여쭤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나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여야 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이렇게 많은 시간들을 거쳐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살아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신기했다. 김은선 선생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는 만들어져 가고 있으며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또한 역사의 한 장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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