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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삼옹의 나주이야기
김준 기자  |  najuk2010@naju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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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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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찌리로 갚는 술값과 담배값

나주시 왕곡면이여. 여그 동사촌 최씨가, 저그 구림, 영암 구림 낭주 최씨요. 그런디, 그 사람들이 거그서 인자 동사촌서 산디, 거그 들어와 살면서, 어치게 와서 살었냐 하면, 그 사람들 거그 와서 고용살이를 했어라우, 최씨가. 그래 가지고 그 동네서 인자 살게 되았제. 그래가꼬 지금 여러 수 십호가 되았는디.

자기 그 집, 저 문중에서 최씨 문중에서 인자, 초상이 안 나요잉? 초상 나먼 인자, 그 복인들, 복제. 옷. 상복 말이요잉, 이런 것을 인자 재단을 해서, 해사 지은디, 옷을 만든디, 재단 그거이 허기가 어려와요. 아무나 못 해. 근디, 그것을 헐 사람이 없어, 자기 집안에서는. 그런께 그 이웃 동네, 누구 잘 허는 사람이 있은게 그 사람헌테, 인자 보내가지고 인자 그 베를 보내가지고 해 오든갑디다.

근디 종래 최씨에서 회진 임씨 혼인을 했어. 메누리가 임씨에서 왔어요. 왔는디, 그 집이가 초상이 났거던. 그랬는디, 아직 젊은 색씨제. 근디 자기가 인자 시할아버지가 돌아가겠는디, 뭣을 모도 응, 베를 마포베 같은 막 이렇게, 싸고 제복지 인자 마포를 싸고 그래가꼬 또 뭔 음식 말이여잉. 옛날 그 명태 같은 거, 그 저 고실고실헌 그런 음식을 또 한 보따리 싸고 그래가꼬는 인자, 싸거든. 근께, 뭣 헐라고, 근께 초상 나도 그런 일을 본 일이 없어. 근디, 그런게 하도 이상헌께는, 가 물었어요, 자기 시아부지, 시부 보고.

"아이 아버님. 으찌 모도 제복지를, 옷을 베를 모도 싸고 우째 그렇게 허시오? 우쨀라고 그렇게 그러시오?"그런께, "아 여그선 제복 빌 사람이 없고, 그래서 아무 마을 그 아무개 냥반이 그 잘 비슨디, 그서 거가서 비올라고 보낼라 그런다. 이렇게 수고헐 것인께 음식 좀 보내볼라."고 그런께는,"그러디야." 해.

"그럼, 거그 놔두시오. 보낼 것 없소."그러거던. 그런께는, "왜 그래야?" 그런께 메누리가 그런 거 잘 헐지를 모르고, 젊은 여자가.

"아, 그럼 놔두세요. 제가 헐께 놔두시오. 놔두세요." 그러드라요. 그래 놔뒀어.

그러더니 나중에 바느질 잘 허는 사람을 서인가 오라, 서이고 너이고 오라 그러드라우. 동네 사람들 중이서. 그러더니 베 딱 펴놓고 비기 시작헌디, 번쩍번쩍 허드라게.

처녀, 저 색씨가. 그럼서, "옷 지라."고, 요렇게 요렇게 시켜.

"여긋다 대고 어찌어찌 지으라." 고. 그래가꼬 또 안 밀리고 딱 해논께, 그 소문이 날 것 아니요?

"아무개 댁에 최씨 집이 새로 들어온 신부가 이렇게 제복을 이렇게 빈디, 이렇게 이렇게 비고 해서 차암 아조 잘 헌다."고 말이여잉.

"아주 솜씨 잘 헌다."고 인자 그렇게 소문이 나고 그랬는디.

그 즈그 시아부지가 허신 말씀이, 메누리가 그런 걸 허는 걸 보고 뭐이라고 했는고이는, "과연 양반은 양반이다. 내가 양반 혼인해가꼬, 참으로 내가 우리 가문 빛난다." 그러드라우.

그래, 그 신부 들어온 뒤로는 그 집안에서 초상 나도 넘의 집으로 그런 손 빌리러 안 가고, 또 그 언저리서 인저 전부들 고리 와요. 그랬다는 이애기가 있어요.

(이수자 : 회진 임씨 집안에서 들으면 너무나 좋아할 이야기네요.)

그러지요. 회진 임씨가 양반 아니오? 그러니께 과연, 과연, 양반은 틀리다고 그러드라우.

(1) 담배 볼찌리

※ 1999. 7. 3(토)에 채록했다. "이거 민속놀인디, 요 이애기를 한 자리 해볼까?" 하며 들려준 것이다. 설화는 아니지만, 나주의 풍속을 알 수 있는 자료라 소개하기로 한다.

볼찌리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데, 다시 살려 쓰면 좋을 것 같다. 볼찌리에 대해서는 조사자도 처음 들었지만, 딸인 나정희씨도 처음 들은 말이라 했다.



경기도나 다른 디도 요런 인자 그 거시기가 있는가는 모른디, 여그가 볼찌리라는 것이 있어요. 볼찌리. 들어 아시오? 볼찌리? 이것도 처음 듣지라잉? 볼찌리라는 것이 있어. 볼찌리.

볼찌리. 요것이 뭔 뜻이냐 허먼, 볼이라는 것은 본다는 것이고, 볼찌리라는 것은 질어낸다, 뭣을 키워 지려낸다. 보고는 지려낸다. 그런 뜻이여.

그런께 이 볼찌리라는 것이 뭣인고이는, 가령 한 동네 사는 사람이, 오다가다 어디서라도 만나서,

"나, 담배 없은께 담배 한 대 주소."

보통 담배는 서로 나눠 피지 않소? 그러먼, "볼찌리로 내가거라, 볼찌리로." 그런단 말이요.

그러먼, "응, 그러먼 볼찌리로 도라."

그러먼 담배 한 대를, 옛날 엽초이, 한 대를 줘요. 그러먼 그 놈을 받어서 인자 피고는 인자, 그 놈을 갚어야 쓰는디 어트게 갚느냐? 그 뒤에 보먼 갚어야 써. 볼 때마다. 그래서 볼찌리여.

볼 때마다 갚어야 써. 그런디 보는 것도, 서로 봐야제, 한나가 봐서는 안 돼야. 그런께, 볼찌리 내다가 담배 피는 사람이, 볼찌리 준 사람이 저그서 안 오요? 저 사람이 날, 날 못 봤어. 그러먼 나는 돌아서서 피해부러야 써. 엥기먼 갚어야 쓰거던. 그 쩍 담배 없어서 못갚으먼 그 뒤에 고 놈 또 인저 꼬매서 갚어야 써.

그러는디, 그러먼 그렇게 한 번 정해놓으먼, 그 이내 그렇게 안 되지라이. 기한이 있어, 기한이. '열흘로 허자, 닷새로 허자. 그래가꼬 그 기한 넘어가부르먼 무효여 인자. 무효 되아 부러. 그런 장난이 있었어요. 그 볼찌리라고.

응, 옛날에. 그 볼찌리. 우리도 어려서는 모도 그런, 그 볼찌리로 모도, '볼찌리로 가져가라.'고, 그런 소리, 나 들었어. 요새 세상에는 없어져부렀는디. 그런 거시기가 있어라우.

이것이 그 지방 풍속이요. 응. 그런께 요런 것이 재미있단 말이요. 간단해도.

(나정희 : 재미로 그랬는가 봐요. 맨들었는가 봐요잉.)

만들었제 그게. 말도 볼찌리라 또 다 짓고. 껐소?

(2) 술 볼찌리

※ 같은 날 이야기 조사를 거의 끝낼 무렵, 볼찌리에 대한 말을 더 해주셨다. 여기에 이 내용도 함께 첨부하기로 한다.



담배 볼찌리 말고, 술 볼찌리가 있어. 모도 주막에 가서 친구찌리 안 만나요잉? 그러면 "너 술 한 잔 받아라."허면 "볼찌리로 묵을래?" 그러먼 인자. 그 넘은 돈이 안 많것소? 담배 한 대 보덤은. 그러먼 인제 먹고 싶은대로 먹제.

그러먼 그 놈은 또 어떻게 기약을 허냐먼, 구두기한이 있어. 무제한, 기한이 없으먼 안 되지라잉. 그러믄 고 놈은 기한이 길어. 한 동네서 담배 한 대 피는 것은 늘 만난께 기한이 짧고, 요 놈은 주막, 타동네 주막에서 만나논께 그건 자주 만나질 것이오? 그런께 기한이 질어. 요놈은 보름도 허고 한달도 해라우.

그러먼, 그 볼찌리 묵은 사람이 주막을 보름간만 안 가버리먼, 보름간만 안 가버리먼 무효여. 그런디 그 넘이 안 가질 것이오? 자주 술 질기는 사람이 주막을 자주 가기가 쉽제. 어쩌다 만나. 어쩌다 만날 것 아니오잉? 만나면 인제 볼찌리 갚아야제.

그렇게 해서 그런 장난, 인자 어려서 장난을 많이 했어라우. 많이 했어. 인제 모도 폴짝 같이 웃고 볼찌리 인자 갚는다 허먼, 나도 인자 거기서 개평 한잔 하자 하고 모도 대들고, 달라들고, 인자 모도 웃고 인자 나도 그런 일 많이 봤어요.

볼찌리. 이거 참 귀헌 말이요. 나중에 완전히 없어진 말이여. 전라도 간께, 볼찌리, 볼찌리가, 볼찌리 빚이 있드라고 그러시오.





연재내용 중에 정정

2011년 3월 14일, 나주신문 882호에 실린 <회진에 양반 구경 온 혀 짧은 윤고산 아들> 이야기는 '아들'이 아니라 '고손'인 것으로 정정합니다. 처음 이야기를 해 주실 때 아들인지 고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고손이 맞다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 연재를 마치며



나주대학에 근무하여, 나주를 잘 알게 된 것은 어찌보면 내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었다. 그 전에는 나주라고 하면, 그저 전라남도에서 ‘라’자가 나주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과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멀고먼 남쪽에 있는 어떤 곳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학에 근무하게 된 덕분에 나주의 속내까지 잘 알게 되었으니 정말 고마운 것이다.

나주에는 금성산도 있고, 영산강도 있으며 드넓은 평야도 있다. 고분군 및 고려 왕건과 장화왕후의 이야기가 전할 만큼 유구한 역사도 있다. 그런 만큼, 나주는 문화층이 아주 깊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나주를 접했을 때, 나는 나주가 가진 이러한 자연적 ? 인문적 환경 덕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전해지고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빨리 이런 이야기를 채록해 두어야 한다고 문화원을 졸랐다. 결과로 만나게 된 분이 바로 나종삼 어르신이다.

나종삼 어르신은 만날 때마다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어르신 자체가 이야기 화수분인듯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방학을 빼고, 거의 1년간 반남면에 있는 어르신 댁을 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녹음해 왔다. 비오는 늦은 밤, 혼자서 나주로 돌아올 때는 무서울 때도 많았다. 길거리에 있는 비석들이 마치 죽은 사람이 부활하여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과로 어르신으로부터는 약 500여편의 이야기를 채록할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어린 시절 들었지만 처음 해보는 이야기도 있다 하니 얼마나 총기가 좋으신지 알 수 있다. 이야기 중에는 나주, 영암, 무안, 함평 지역을 포함하여 여러 곳의 이야기들이 있고, 인물담, 풍수담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이번 나주신문에 연재한 이야기 20편은 특히 나주지역과 관련된 내용만 추린 것으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통사회에 있어서는 아마도 어르신과 같이 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분들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 이유는 텔레비전의 보급이나 화투문화의 보급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나종삼 어르신은 나주의 보배이며, 또한 우리나라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채록한지 벌써 10여년이 지났으므로 이제 빨리 자료를 책으로 출간해 드려야 할 텐데, 이왕이면 나주 쪽에서 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더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소중한 이야기를 해주신 나종삼 어르신과 옆에서 이야기판 분위기를 도운 나정희씨, 나주에 인연을 맺게 해 준 나주대학의 박종채 교수님, 그리고 나주에 근무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나주시청 윤지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직원분들, 나주문화원 식구들, 그리고 이러한 지면을 빌려준 나주신문 및 이헌영 기자님,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읽어주신 나주신문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역사의 도시, 나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이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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