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엣 가시

  • 입력 2011.12.20 12:11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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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대문 앞에 전신주 지선이 비스듬히 버티고 있었는데 통행에 불편할 뿐더러 차량을 주차시키려고 후진할 때 마다 매우 거치적거리어 항상 눈엣 가시거리가 되었다.

몇 일전 한전 민원실을 찾아가 지선을 이설해 주거나 다른 수단으로 도와줄 것을 청원했다.

현장의 이모저모를 두루 살피더니 마침내 반대편에 지주로 대치되었다.

오래전부터 바라던 숙원이 속 시원하게 해결됨을 우리 속담에 '눈에 가시를 뺏다.' '앓던 이빨 빠진 기분이다.'라고 말한다.

눈엣 가시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몹시 미워 늘 눈에 거슬림의 비유'라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과 사람들 간에 형성된 우리의 사회집단이 저마다 복합체적 성격을 가진 가운데, 한 직장 안에서, 한 동네에 사는 이웃 간에, 더 나아가 지역, 계층, 당파, 이념, 종교, 인종, 국제간에 감정을 지닌 인위적 구성요소이기에 늘 눈에 가시 같은 인간관계를 지닌 채 서로가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겠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여러 이질적인 성질 때문에 대립과 갈등으로 빗어진 반목은 서로가 소통 부재인 까닭도 있겠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상물을 보는 심안[心眼]이 이미 부정의 눈으로 보아버리는, 자신의 고정관념 속에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발단하는 편견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보편적 이론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의 주위에도 눈에 가시 같은 불순물이 내재 되어 있지는 않은지? 그런 기미의 요인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있다면, 더 이상 혈안이 되어 악화되기 이전에 빨리 이를 빼내 버리고 상대를 배려하고 수긍할 줄 아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잘 알려진 <맹자,공손추>에 나오는, 무엇보다 사람의 인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예를 들어, 사방10리와 외곽7리 밖에 안 되는 성을 공격하고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반드시 하늘이 내려주는 시운을 택했을 것인데도 이기지 못했다면 하늘이 내려준 시운이 유리한 지세보다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성곽이 높지 않는 것도 아니고, 둘레의 호가 깊지 않는 것도 아니고, 무기나 갑옷이 견고하고 예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군량미가 많지 않는 것도 아닌데 성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수도 있다. 이것은 유리한 지세가 사람의 인화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피차가 눈에 가시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삶을 살아서도 안 된다.

증오와 절망의 눈빛에서 사랑과 희망의 눈빛으로...

그래서 평상심을 가지고 너그럽고 부드러운 편안한 눈으로 상대를 볼 수 있도록 바꾸어 보자.

한전 민원실 데스크위에 전신주 지선의 일 처리 모양으로 서로가 절충식 일의 타협점을 찾아내어 인화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보자. <竹>



박천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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