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들의 착각

  • 입력 2011.12.20 12:11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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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당선된 후, 정치판에서는 새판짜기가 분주하다. 여당과 야당 모두 당내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고, 당내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과 더불어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대선후보론이 힘을 얻으면서, 기존 정당과는 차별화되는 시민주도형, 시민참여형 개혁정당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정당에 대한 기대감은 일부 서울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정치개혁 논쟁은 대통령 임기말이 되면, 그리고 총선거를 앞두고 정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정치권의 단골메뉴이다. 대선후보 선출을 위해서 혹은 총선공천을 위해서 정치인들이 벌이는 자기 밥그릇 싸움이 '정치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주도한 낙천낙선 운동, 공천혁명 등이 전에도 있었지만 한국정치는 여전히 개혁의 대상인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정치개혁' 논쟁에는 새로운 양상이 하나 추가되었다.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고 안철수 교수가 대선후보 물망에 오르면서 기존의 정당이 아닌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정당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박원순-안철수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향후 대선이나 총선에서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보다는 그들을 반대하고 의심하는 유권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지난 10ㆍ26 보궐선거는 대한민국 진보적 시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된 풀뿌리 운동이 아니라 소수의 명망가와 활동가 중심의 지식인 사회운동으로 귀결되었고, 지역적 기반은 거의 서울로 한정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시민운동조차 아스팔트로 뒤덮힌 서울시내 중심에서 주로 벌어졌다.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다.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서울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울시장 선거에선 단합된 힘을 과시했고,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서울시 경계를 벗어나면 시민사회운동의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뿌리를 내릴 토양은 풍부하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 황무지나 다름없는 것이 비수도권 지역의 시민운동 현실이다. 시민사회 운동에 비교적 우호적인 20-30대가 몰려있는 서울시와 달리, 비수도권 지역에는 진보개혁 진영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50-60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시민사회 세력의 집권이 현실화되려면 20-30대가 서울에만 몰려있지 않고 전국 각지에 정착해 여론을 형성, 주도해야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박원순-안철수 돌풍은 찻잔 속에 태풍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장호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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