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한다

장호순박사

  • 입력 2012.02.08 09:44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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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가해 학생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같은 단기적 처방에서부터 경쟁위주교육의 지양과 같은 장기적 처방까지 다양한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른들의 반성과 사죄이다. 학교 폭력은 친구의 소중함 보다는 친구의 이용가치를 중시하는 어른들로부터 보고 배운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필자의 초등학교 친구 성호가 충남 온양에 사는 나를 찾아왔다. 우리가 함께 다닌 초등학교는 서울 화곡동에 위치한 신정초등학교이다. 우리는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표주자인 58년 개띠들이다.

초등학교 졸업후 우리는 헤어졌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내가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것은 5년전 초등학교 동창회자리였다. 1971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까 36년 만이었다. 당시 성호는 나를 바로 알아보고 반가워했지만 나는 그를 기억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나는 6학년 때 짝을 한 여학생친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랫만에 나를 본 친구들은 대부분 나를 기억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좀 잘한(?) 덕분이었다.

내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한 것이 서운했는지 성호가 다음 모임에 사진 한장을 갖고 왔다. 초등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찍어준 사진이다. 나도 갖고 있는 사진이었다. 졸업앨범사진과 졸업식 사진을 제외하고, 나에게는 유일한 초등학교 시절 사진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성호를 기억할 수 있었다. 성호는 키가 작고 여자아이처럼 상냥한 아이였다. 성호보다 거칠은 여자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의 성호는 머리숱도 줄어들고 살이 붙은 전형적 50대 아저씨가 되었으니 내가 몰라본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는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을 물려받아 부동산 갑부로 변한 아이들도 여럿이다. 논과 밭이 아파트 단지로 변한 덕분이다. 그러나 야간에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는 친구도 있다.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이 더 많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정도의 여유도 없을 만큼 어디선가 힘들게 세파를 이겨내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소중한 또 다른 이유는 지금은 사라진 나의 어릴 적 고향모습을 기억 속에서나마 되살릴 수 있기때문이다.

지금 많은 도시의 아이들은 고향이 없이 자라고 시골의 아이들은 고향을 떠날 준비를 하며 자란다. 아이들의 현재보다는 미래가, 고향의 추억보다는 학교성적이 더 중요하고 믿는 어른들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아이들이 고향을 소중히 여기고,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아이들이 친구의 소중함도 깨달을 것이고 자연히 학교 폭력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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