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듯하고 포근한 이웃집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박상금씨

  • 입력 2013.05.13 11:06
  • 기자명 김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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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주위를 살짝만 둘러봐도 야쿠르트 아줌마가 눈에 뛴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이분들은 야쿠르트로 우리에게 건강을 전달해주는 전도사이기 이전에 가슴 따뜻한 이웃집 아줌마이며 우리의 어머니이다. 빛바랜 추억 속 한켠에 늘 함께해 온 야쿠르트 아줌마이기에 고맙고 그 존재만으로도 감동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카트를 끌고 다니시는 상냥한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 봤다. 그는 바로 한국야쿠르트 광산점에서 근무하는 박상금(66세)씨이다. 이 일을 시작한지 벌써 27년째이다. 생계를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박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작은 바람을 전하면서 27년 전을 회상한다. “돈이 없어 먹고 살려고 나왔지요.”


그는 야쿠르트 아줌마로 살아온 인생이 그리 쉽지만은 안았다. 아침 6시30분에 출근에 오후 1시까지 쉴새없이 배달을 한다. 처음엔 배달을 하다보면 야쿠르트 값을 지불하지 않고 말없이 이사를 간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본인이 물어야 했다. 또 야쿠르틀 훔쳐가고, 가방을 통째로 들고 간 이들도 있었다고.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이 일을 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했으니까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용기가 대단했던 것 같다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예전에 순진해서 좋은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순수함이 사라지고 사람이 무서운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그만큼 순수함이 사라지고 삭막한 세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가능했다. 많이 벌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장가보내고 시집 보낼 수 있었다. “이 일을 한 덕에 자식들 가르치고 결혼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즐겁게 일할 것만 같던 박씨에게도 평생 지고 가야할 아픔이 있다. 그것은 큰아들이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마흔한 살인 그 아들은 걸어 다니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많다. 시설에 가는 것을 싫어하기에 하루 종일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이 아들을 매일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장성한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형편에 처해 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오늘도 전동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현장을 누빈다.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만난다. 예전에는 전동카가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자전거를 이용해 배달을 했으며, 최근 3년전까지 자전거를 이용했다. 그러나 3년전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인해 손목이 부러졌다. 이후부터는 손목에 힘이 없어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지금 전동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박씨는 “건강이 제일이기에 건강하게 남은 인생 살다가 가는 것이지요. 자식들도 살기 힘든데 자식들에게 피해 안주고 사는 것”이라고 소박한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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