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 농촌에도 희망은 있다”

왕곡면 김상모씨, 근검절약이 부농의 지름길

  • 입력 2013.05.15 12:57
  • 기자명 김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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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배를 잡고 하루 농사일을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해서 밥 굶기를 하루 세끼 밥 먹듯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절과 신앙이 있었기에 현재의 부를 이룬 것 같습니다.”

1972년 군 제대 후 25살 때 바로 농사일과 다듬이 공장(자리 만드는 회사, 영산포 삼거리 현 해랑모텔)에 다니면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왔다는 김상모씨(66, 왕곡면 덕산리). 다 허물어 가는 초가집에서 5남 2녀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억척같은 삶을 살아오며 남부럽지 않는 부를 이루었다.

가장노릇을 시작한 2년 뒤 27살 무렵 김씨는 장산리에 살던 김애순씨(58)를 중매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당시 부인 김씨의 나이가 19살이었지만 장인어른의 지병이 있어 일찍 연을 맺게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고생을 이루 말 할 수 없이 했지요”라며 옛날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는 부인 김씨는 “영산포농협에 다니는 큰애 희준(38)와 둘째 희철(36)이, 독일에서 성악을 공부중인 희열(34)이를 생각하면 어릴 때 남들처럼 못해줘서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요”라며 회상했다.

70년대의 나주의 농촌현실은 넉넉하지 않았다. 영산강하구언이 축조되기 전 나주의 농토는 바닷물이 논두렁으로 범람해서 논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김씨의 논농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대농을 해온 그는 해마다 반복되는 해수피해로 결혼 후 1975년에 가까운 영암으로 돈 벌러 가야했다. 다듬이 기술자로 인정을 받았던 그는 나주에 있던 회사가 영암으로 옮겨가자 논농사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당시 임신 중이던 부인 김씨와 영암으로 갔다.

“안 해본 것 없어. 짚으로 이는 일부터 온돌방(방독) 까는 일, 직접 만든 두부장사, 닭 가래와 김 발 만드는 일, 임대한 과수원 일 등 나주와 영암을 오가며 1년 남짓 오로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일만 했지”라는 그는 “두부 만들어 파는 날이었나, 큰애 희준이가 돌 지나고 아장아장 걸을 무렵 분뇨통(그 당시에는 인분을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분뇨통을 앞마당 같은 곳에 만들어두고 가스를 추출해서 사용했다)에 빠져서 허우적댔지, 다행히 목숨을 건진 큰애를 토하라고 옆에 엎어 두고는 생계를 위해 두부 만들었지”라며 눈가를 적셨다.

그가 농사일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 것은 부친이 작고한 1978년에 시작됐다. 그 당시에 지지리도 가난했다는 그는 자식들을 키우느라 ‘한섬’ ‘두섬’ 주변에 얻어다 쓴 부친의 빛을 갚아가며 벼농사와 과수농사에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수확기였다. 배 수확 후 판로가 여의치 않았던 해에 그가 직접 내다 팔아 보았고 수익도 괜찮았다. 1991년에 주변사람과 장모의 권유로 그는 농산물을 직접 파는 방법이 고생은 되지만 더 많은 수익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힘든 농사일을 해 가면서 그해 수확한 농산물을 처음에는 경운기에 싣고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다.

“10년 정도 장사를 한 것 같네, 점심이전에 모든 물건을 다 팔 정도로 잘됐어, 아마도 장사한지 3년 정도 지났나, 주일 성수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부터 만사가 다 잘 풀린 것 같어”라는 그는 “IMF가 온지도 모를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지, 이제는 배 과수에만 전념하다 시피하고 있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살던 때를 비교하면 남부럽지 않는 큰 부농을 이뤘다. 현재 배 과수 19,800㎡, 기타작물 6,600㎡ 정도 농사를 짓는다. 철저한 기독교도인 그는 하루하루를 이웃에 봉사하며 살아가는 신앙적인 삶을 제일 중요시 한다.

“주변에 돌아보면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만하지. 젊은 사람들이 성실하고 부지런히 농사지어봐. 적극적이고 가정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어”라는 그는 “잘살려면 근검절약이 우선이야. 그 다음 돈을 모아야지, 버는 대로 다 쓰면 그게 모이나. 1만원 이상 되는 옷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라며 너털스럽게 웃어보였다.

그는 부인 김씨를 생각하면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 많이 했지, 그럼에도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해지도록 유지해왔지, 이 근방에 소문이 났어, 형제간에 우애가 넘친다고, 너무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두 부부는 자녀들이 “‘나보다 잘사는 사람보다는 나보다 부족한 삶을 살아가는 즉 내려다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옛 말처럼 과욕 없이 건강하게 가정적으로 살아가길 원해요, 더 나아가 항상 주님께 순종하는 신앙을 잘 간직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요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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