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유봉자 서예가 40여 년 외길 인생

문방사우와 함께 묵향에 훔뻑 빠저 일평생 보내

  • 입력 2013.07.01 11:19
  • 수정 2014.08.20 14:11
  • 기자명 김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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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0세 맞아 개인전 마련할 계획

스물살에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선생을 만나 서도(書道)에 사표(師表)로 삼고 묵묵히 서예가로서 스승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소현(素玄) 유봉자(柳鳳子·69) 서예가(書藝家).
 

‘소현서예원’(광주 북구 두암동)에 찾았을 때 그의 작업실에는 묵향 짙게 배여 있었다. 서실 안쪽 방에서 그를 만났다. 벌써 붓을 잡은 지 40여 년을 훌쩍 넘긴 그는 서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쓰고 또 써도 닿을 수 없는 경지입니다.” “서예는 무언의 수양입니다. 우리의 예술이기도 하고요. 서예는 그냥 글씨가 아닙니다. 점 하나 획 하나가 서법에 따라 무궁무진하고 그 속에 예술성이 담겨있습니다.”

 
 

50여 년 가까운 세월동안 문방사우를 반려로 삼아온 그는 욕심이 없다. 국전에 입선을 하고,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활동도 했다. 개인전도 네 번이나 열었으며, 꾸준히 그룹전에 초대되고 있다.
나주 다시면이 고향인 유씨가 붓과 인연을 맺은 것은 광주여고 2학년 때로 친구 둘과 함께 취미삼아 학교에서 한글 서예를 배웠다. 1964년 졸업이후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했다. 그의 첫 스승은 남용서예원의 김용구 선생이었다. “한문서예를 시작한 거지요. 남용 선생에게 4년쯤 배웠습니다”
 

청춘시절을 문방사우와 더불어 묵향에 취해 살았던 그는 1970년 두 번째 스승인 소암 현중화 선생의 제자로 공부를 시작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남용 서예원을 다닐 수 없게 되자 박건복씨가 ‘소암 선생을 광주로 모셔와 함께 공부를 하자’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세월을 소암 선생은 한 달에 한 번씩 광주로 건너와 유씨를 가르쳤고 1997년 타계할 때까지 엄격한 스승이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앉는 자세부터 운필(運筆) 용묵(用墨) 이전에 공부한 것을 없애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스승의 필법을 배워야 했으니까요”
 

소암 선생의 가르침은 혹독했다. 체본을 복사하듯 써내지 않으면 제대로 될 때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조금만 틀려도 불호령이었으니 ‘一 (한일)’자만 몇 주를 썼는지 모를 정도였다. “스승님은 한 번 광주로 오면 4~5일씩 머물면서 제자들을 지도했어요. 그렇게 마산 부산에도 다니시면서 소묵회 회원들을 길러냈어요”
유씨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서예에 몰두했다. 직장에 매였다간 글씨가 아예 될 성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암선생으로부터 주로 육조체를 익히느라 고정비, 장맹용비 등 남북조시대의 비문을 끊임없이 사서했다.
 

소암 선생은 그에게 노자의 ‘현지우현(玄之又玄)’에서 현(玄)을 따와 소현(素玄)을 아호로 지어주었다. 그는 밖으로 표출하기보다 내면에 침잠하는 수줍은 모습이었다.
그는 예기에 나오는 ‘학연후지부족(學然後知不足, 공부한 연후에야 부족함을 안다)’을 신조로 즐겨 쓰며, 수십년을 글을 써 왔지만 재주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다고 자신을 채찍질 한다. 그렇지만 한 번도 이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 “항상 미흡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늘 자신의 모자람이 보입니다.”

 
 

유씨는 1981년 광주 북구 유동에 소현서예원을 열었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붙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도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했고 더불어 공부할 동행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후 1993년 두암동으로 서예원을 옮겨 지금까지 32년 동안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한편 유씨는 최근 고향에서 서예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지면 언제든지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사람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서예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유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젊은 나이에 빛을 보기가 힘들고 중년이후에나 겨우 빛을 보기때문이란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며 전공하려는 사람도 적다고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돈벌이가 되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저 정년퇴임한 분들이 취미삼아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정도로 젊은이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씨는 향후 70세 되는 내년에 무엇인가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개인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개인전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음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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