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민주 “당원투표로 결정”, 새누리 “한시적으로”

  • 입력 2013.07.22 12:01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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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가 내년 6·4지방선거의 판도를 바꾸게 되는 만큼 정치권의 찬반여론이 뜨겁다. 새누리당은 폐지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고 민주당은 당원 투표로 결정키로 하는 등 여야가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공천제폐지는 여야 모두 대선공약으로 정한 만큼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찬성 지방정치 실종, 줄세우기 공천 폐해 심각
반대 책임정치 실종, 위헌소지, 여성진출 한계


우리나라의 지방 선거는 지난 1991년에 부활됐다. 1995년부터는 모든 지방자치 일꾼을 동시에 뽑는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도입돼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 선거가 실시됐다. 기초단체장은 처음부터 정당공천이 있었고 기초의원은 금지돼왔는데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따라 2006년부터 정당공천이 허용됐다.
하지만 공천에 따른 각종 부작용 때문에 지난 대선에선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이 제시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처음부터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의 전면적 배제를 약속했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배제의사를 밝혔으나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배제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이후 안철수 후보와 공조과정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도 폐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1년 정도 남겨놓고 있는 시점에서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여야의 움직임은 적극적이지 않다. 지난 4월 24일 실시된 재보선에서는 새누리당에서는 대통령선거 공약을 지킨다는 취지에서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지방선거에서 후보자공천을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지방자치안전위원회(위원장 김동완 의원)라는 당내 기구를 통해 정당공천제 공론화와 내부 의견 수렴에 나서는 수준이다.

민주당은 그것보다는 논의가 진전돼 6월 18일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를 구성해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고, 향후 위원회의 의견을 당원 전체 투표에 부쳐 최종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여성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지방의회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정당공천제도를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두 거대 정당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진보를 기치로 든 정당들은 정당공천제 유지 입장을 당론으로 정할만큼 명백하게 제도유지 입장을 나타내고 있고, 시민 단체도 입장에 따라 다른 주장을 내놓는 상황이다. 따라서 내년 지방 선거에서 정당 공천제가 유지될 것인지는 여야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

먼저, 기초지방선거에 있어서 정당의 공천을 배제해야한다는 근거로 무엇보다도 지방자치행정의 비정치적인 성격을 근거로 든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기 때문에 행정적인 성격이 강하며 정치적인 요소가 많지 않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다리를 놓고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정당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비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지방선거에 정당의 관여를 허용하는 경우에 지방의 문제가 지방적인 관점에서 결정되기 보다는 전국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됨으로써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될 우려가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이슈는 실종되고 지방선거는 중앙정치논쟁으로 지방선거가 결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셋째로, 우리나라 정당의 뿌리깊은 지역적 성향을 든다. 지방선거에서 정당참여를 인정하는 경우에 지역분할구조를 고착화하게 되고, 고질적인 지역 연고주의가 심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사실상 정당에 의한 임명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게 되면 주민에 의한 선거의 의미는 퇴색되고 공천경쟁이 이를 대신하게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호남지역이나 영남지역에서 정당공천은 곧 당선을 의미하게 되어 지방선거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실정이다.

넷째로, 정당공천이 정당을 고리로 부정부패를 확산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지역구도하에서 정당공천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천헌금을 요구하게 되고, 공천헌금을 통해 공천을 받고 당선된 지방정치인은 돈을 회수하기 위하여 부정부패에 연루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정당들은 이를 개선한다고 경선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과정이 지역국회의원이나 정당의 실세에 의하여 왜곡되고 굴절되는 경향이 있어 공천헌금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을 주장하는 이유

정당의 공천을 기초지방선거에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첫째로,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함으로써 주민의 후보자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고 있어 유권자들은 후보자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정당이나 신뢰받을 수 있는 사회단체에 의한 입후보자의 추천은 선거권자의 선택을 도와주게 될 것이라고 한다.

둘째로,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공천을 배제하더라도 선거과정에서 사실상 내천이 이루어지며, 선거에 정당이 간접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정당을 배제하려는 취지는 현실에 있어서 사실상 실현되지 못한다.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경우에 정당의 지방정치에 대한 관여는 밀실에서의 거래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셋째로, 정당의 공천이 배제되고 정당의 지방정치에 대한 관여가 허용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책임 있는 지방정책적인 대안을 제공하고 그 성패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지가 불분명 하다는 것이다.

넷째,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헌법 제8조의 정당조항과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한다. 헌법상 정당의 활동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당공천제는 여성의 정치참여 내지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대표자를 확대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당공천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정당공천 존치론이나 정당공천 폐지론이나 모두 논리적으로만 보면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진다. 문제는 그러한 주장이 우리의 정당문화나 정치풍토를 고려하지 않고 논의하는 경우에 현실과 괴리된 이론이 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는 “정당이 분권화되고, 당원이 많고, 민주적인 공천이 정착된 나라에서는 정당공천 존치론이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정당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당원이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국가에서 정당공천제도의 장점은 부각되지 않고, 그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당장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것인지 여부는 정당공천이 현실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그것이 단기간에 고쳐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제도가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 것일까.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정당공천제도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상향식의 공천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개선하는 모양새를 취하였다. 하지만 민주적 정당공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국회의원의 개인적인 영향력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사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과정에서 공천비리 내지 돈추문은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정치구도 속에서 공천권이 흥정되고 거래될 위험성은 항상 상존하게 된다. 정당공천에서 금품수수 등 부패문제는 당선된 지방정치인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패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지방선거에서 지역현안문제에 대한 쟁점화보다는 중앙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내지신임투표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정권심판에는 성공했지만 풀뿌리 자치는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지방정치가 실종되고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대신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당선된 정당공천 후보자는 당선 후 업무수행에 있어서도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사실상의 공천권자인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해질 우려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 사실상 동원되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언질에 활동이 좌우된다. 지방정치의 중앙예속화가 일어난다. 지방정치인은 더 이상 주민대표가 아니라 정당대표 내지 국회의원의 개인대표로 전락한다.

전남도청을 목포로 이전할 때 도민의 70~80%가 반대했는데도 지역정치권이 동교동의 눈치만 보느라고 아무런 대응도 못했다. 지역정치권이 지역민의 이익보다 중앙정치의 거수기 노릇만 했던 것이다.

정당공천으로 인한 폐해는 지방의회가 지역현안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노력보다는 추상적인 이념 논쟁을 일삼는 경향을 보이기 쉽다. 지난 2010년 나주시 민생예산 파동에서 보듯 시민의 편익과 복지는 뒷전이 되고, 주민편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공허한 정치논쟁이 지방정치를 지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선공약은 지켜야 한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역대 지방선거 때마다 정치개혁의 주요 방안으로 거론돼 왔으나 여야 정치권의 의지 부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것은 물론 지역 맹주 격인 국회의원과 지방정치인 사이의 예속관계 및 부패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 주요 명분과 취지다.

하지만 지방 정치와 행정의 책임성 약화, 업무 비효율성, 참신한 인재 발탁과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 배려의 어려움 등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우려도 있는 데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실현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배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정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신뢰정치의 출발이자 새로운 정치의 최소요건이다. 정당이 공약으로 약속을 하고서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정당이 된다. 국민을 향하여 거짓말하는 정당은 국가가 각종 특혜를 부여해서 보호해야하는 정당으로서 자격을 상실했다고 보아야 한다.

공약을 했으면 이를 지키는 책임지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정당이 된다. 책임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양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공약으로 제시했던 정당공천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 /정리 박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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