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봉사는 행복”

왕곡면 행장마을 부녀회장 조영애씨

  • 입력 2013.08.05 11:42
  • 기자명 김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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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왕곡면 행장마을회관에서 조영애씨(59. 행장새마을부녀회장)를 만났다. 이날은 중복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부녀회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분주한 손놀림으로 어르신들에게 고기와 떡, 과일 등을 날랐다.

건강한 여름을 보내라고 마을부녀회에서 어르신들에게 보양 음식을 준비해 대접한 것이다. 조영애씨를 포함한 몇 명의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주루룩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맛있게 음식들을 잡수시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봉사가 몸에 베인 조씨는 왕곡면 새마을부녀회 총무와 회장으로 9년을 봉사했다. 그런 수고가 인정되어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그전에는 전라남도지사상, 나주시장상, 새마을중앙회장상 등도 받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땀 흘리며 봉사한 대가일 것이다.


광산김씨 집성촌인 이곳에서 박씨(남편의 성)가 부녀회장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마을 어르신이 하라고 해서 2년만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벌써 15년째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봉사라는 말만 들어도 신난다고 말하는 그는 22년전에 광주광역시에서 이곳으로 귀농했다. 농사라고는 지어본적이 없는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농사를 짓던 남편의 형님이 경운기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형님의 자녀들이 시골에서 조부모와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홀로 남게된 조씨의 시아버지와 형님의 자녀 셋을 키우기 위해 남편따라 지금의 왕곡면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시골 생활이었다. 시아버지와 남편, 형님의 자녀 셋, 그리고 자신의 자녀 셋(아들 둘, 딸 하나)이 함께 시골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다들 장성해 타지역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른네살 먹은 정신지체 2급인 조카와 살면서 축산에 전념하고 있다. 정신지체가 있는 조카가 가끔 발작을 일으키면 감당하기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축사에 나가 소 밥도 주고 청소도 잘 도와 준다고.

조씨는 처음 귀농해 노지 3만평에 수박농사를 지었다. 실패했다. 이후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소를 키우키 시작한다. 점점 소의 숫자를 늘려가면서 지금은 축산업만 한다. 4개동 축사에 한우 250두 정도를 사육하고 있다. “사료값은 계속 올라가고 송아지값은 쌉니다”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하소연 한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특히 그는 남편이 너무 많이 도와주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봉사하는 것이 더 힘이 들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소를 키우는 것 말고도 마을 부녀회장으로서 마을의 대소사를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또 지역의 7-8명의 독거노인들에게 매달 밑반찬을 갔다주고 있다. 이 일도 벌써 9년째다. 쉽지 않는 일이다. 자식 하나 키우기도 버거워 하는 세상인데 말이다. 그는 돈을 받고 하는 곳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친정어머니께서 사람에게 공을 드리는 것이 제일 크다고 한 말을 가슴에 새기고 지금도 돈 버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데 공을 더 쏟고 있다는 것이다.

“몸이 안아프고 봉사할 수 있을때까지 봉사하고 싶습니다.” “아직 결혼 전인 아들과 딸이 좋은 짝을 만나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지 뭐 더 바랄게 있나요.” 작은 바람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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