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를 뚫는 아파트 사람들 이야기

  • 입력 2013.10.21 13:31
  • 기자명 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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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포의 내촌마을에서 혼자지내다가 그녀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 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첫아이 임신을 계기로 웃풍이 심했던 정든 곳을 떠나 시내로 나왔다. 그런데 이사 온 집도 어지간히 추웠다. 둘째 아이 임신을

계기로 우리 부부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아파트라는 녀석이 은근히 매력적이다. 앞집 처녀들이 간식거리를, 윗집 아줌마는 요리한 음식을, 아랫집 할머니는 농장에서 나온 것들은 종종 갖다 주신다. 그러면 우리도 다른 분들한테 받았던 호박이며 양배추, 화장품 등을 나누는 것이 또 재미지다.

또 아침저녁으로 엘리베이터, 라인입구에서 마주치면 인사 나누고 아이들끼리 인사시키는 것도 좋다. 같은 어린이집의 아이와 엄마를 초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재밌고 전에 알았던 같은 아파트 사는 누님들, 형님들하고 집 앞에서 간단하게 맥주한잔 하고 들어가는 것까지도 행복하다.


그런데 딱 하나 아랫집 할머니한테 미안하다. 애들 키우는 집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층간소음에 마음을 졸인다. 얼마 전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분이 우리 첫째에게 “으미~~ 우리 딸랑구가 10시전에는 안 자드만. 할머니가 잠을 못자” 하시는데 아빠인 나로서는 너무 죄송하고, 그 후론 밤늦게는 조심에 조심을 더하게 된다.


이 얘기를 우리보다 2살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 후배에게 했더니, 후배 왈 “형님 사과 한 박스 들고 찾아가세요. 우리도 아래층 할머니한테 과일을 종종 들고 찾아뵙곤 하는데, 아이들 키우는 집이 다 그런다고 하시면서 소음문제 한 말씀 없으세요” 한다. 그러더니 이어지는 말이 “그렇잖아도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요즘 우편함에 우편물이 엄청 쌓여있어서 걱정돼 죽겠어요” 한다.


이 아파트란 곳이 삭막한 구조물이라고만 느꼈는데 사람의 온기가 콘크리트를 뚫고 간다. 그래서 아파트가 일반주택보다 따뜻한가 보다. 그리고 사회활동하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면 괜히 반갑고 정이 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세상사는 것이 이러니 어쩌니 하는 것이 건방인 것 같아 아파트에서 겪은 또 하나의 생활담을 남기며 글을 맺어보고자 한다.
아파트에는 라인입구 가까운 곳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설정돼 있다. 비어있으면 올 커니 하고 차를 대고는 했는데 어느 날은 경고장이 붙어 있었다. 또 위반 시 벌금을 물린단다.

그 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데 장애인 주차구역에 정말로 장애인차량만 주차돼 있었다. 순간 이 차들이 그동안 다 어디 있었나 싶은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비록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마음만은 서로 나누며 살아가고,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동정이 아닌 작은 배려를 하는 우리지역민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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