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

  • 입력 2014.01.02 09:32
  • 수정 2014.01.02 09:36
  • 기자명 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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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을 맞으니 버릇처럼 뒤를 돌아보고 높은 곳을 찾아 나선다. 돌아보니 멀리 내다보고 바른 길을 가겠다고 세웠던 계획들은,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치고 헛웃음이 나온다. 작게는

 
 
나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세웠던 계획, 크게는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이뤄가기 위한 계획들이 말이다.

나의 생각과 활동을 신념에 가두고 이념에 가두는 안 좋은 버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답해본다. 특히 보편성이라는 시각에 갇히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우리는, 네모 틀 속에서 이쪽 모서리로 갔다가 저쪽 모서리로 가는 것만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에게 이 안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하자고 외쳤던 것이다.

적당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처럼 지난 대선에서 국가기관이 이토록 많이 선거에 개입했으면, 내 생각으로는 뭔 일이 일어나도 진작 일어났어야 했다. 우리가 아무리 정의라고 외쳐도 박근혜 정부 지지자들은 다른 세력의 딴지로 치부해 버렸다. 또 대중들 역시 이 틀에 들어와 같이 행동하려하지 않았다.

보수권력과 자본가들에 의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박제화(사람의 정신이, 과정이나 결과를 예측하거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없으면서 어떤 문제이든지 고정화돼버린 행위)돼버렸다. 비약하자면 진보진영은 원래 그런 놈들이 돼버렸다.

어제는 철도노조의 파업뉴스를 보던 중 집의 그녀가 “오빠, 새누리당이 저렇게 이상한 짓을 계속하는데 왜 사람들은 자꾸 찍는 거지”라고 묻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의도했던 안했던 우리는 틀 속에 완전히 갇혔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경계에 서는 법을 잊어버렸다.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세상은 움직인다. 또 변화한다. 이런 운동성을 무시하고 신념을 지킨다는 수사(修辭)로 이념, 사상의 틀에 나를 가두지 않았는지 자문해본다. 그랬다. 우리는 유연성을 잃었다. 유연성이 사라지니 대중과 괴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20살,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잊은 적이 없다. 나에게는 그만큼 많은 대중들과 같이 걸어가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과 함께 가지 못가는 것은 아픔이다.

때문에 틀을 깨고 경계에 서서 유연성을 되찾고 싶다. 올해는 내 맘대로 살아보는 것으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보편성에 기대 나를 뒤로 숨기지 않으려 한다. 어리지만 서른 후반에 들어서는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 또 남에게 충고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당신들을 존중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당신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믿어보려 한다.

내 맘대로 살 2014년이 우리의 유연성을 되찾았을지. 그 변화가 당신들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변화를 만들 낼 수 있을지 내년 이맘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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