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윤장현’을 부르는 법, ‘큰 사람아, 큰 사람아’

아버지의 ‘윤장현’을 부르는 법, ‘큰 사람아, 큰 사람아’

  • 입력 2014.05.12 11:21
  • 수정 2014.05.12 11:23
  • 기자명 정동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후보 공천자로

▲ 윤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후보
▲ 윤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후보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후보인 윤장현〈사진〉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위원장에 대해 지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장현 후보는 우리지역 다도면 출신으로 윤지혁(90) 전 초대 나주시장(금성시장)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윤 후보의 부친인 윤지혁씨는 나주댐이 축조되면서 수몰된 다도면 대초리에서 태어나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하여 강진과 장흥, 전남도 식산국장 등을 거쳐 화순군수로 재임하다 금성시로 지명을 바꾼 80년에 초대시장을 역임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재광 나주향우회 고문 등을 거치면서 나주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시민의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초대시장으로 재임중 나주시 신청사 건립을 나주시 송월동으로 확정짓고 금성시의 명칭을 나주시로 개칭하는데 기여했으며, 상수도 설치공사, 중소기업 단지조성, 완사천 보존, 정열사 이전,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비 건립, 나주향교 정화사업 추진 등 수많은 업적으로 나주시 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그는 몰락한 가문의 쉰둥이로, 친척집 새끼꼴 머슴을 하다 독학으로 한글을 배워 공직자 길로 나선 의지가 공직자로 화순군수, 나주시장, 광주부시장 등을 역임했지만 강직한 성품으로 청빈한 생활을 이뤘다.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지만 이웃과 나누길 즐겨하고, 사회에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부모님 밑에서 철부지 어린 윤장현은 혼도 많이 났다. 특히 아버지는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면 서릿발 같이 혼을 내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의지가 강한 분으로 당신이 이루고자 한 것은 꼭 이루었다. 또한 목민관으로서 공직에 있는 것에 상당한 긍지를 갖고 계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린 윤장현을 혼도 많이 내셨지만 절대적 지지자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윤장현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큰 사람아, 큰 사람아’ 하고 부르면서 윤장현이 무엇을 하든 믿음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윤장현이 그 이유를 딱히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 한다.

덕분에 윤장현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었고, 아무리 큰 일도 주저없이 도전하고 성취해 내고야 마는 ‘큰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소년 윤장현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사사로운 삶을 멀리하고 사회에 가치있는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광주의 가치를 지키고, 알리고, 재창조하는데 앞장서 온 윤장현의 삶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983년 중앙안과(현재 아이안과)를 개업해 인술을 펼치고 있는 안과의사지만 의료계 보다는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을 지내는 등 시민운동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시민운동 대부’로 불릴 정도로 각종 시민사회운동의 대표 인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재)5·18 기념재단 창립이사를 역임하는 등 1980년 5·18 이후 ‘광주정신’의 세계화와 열성을 다해 온 인물로 꼽히고 있다.
전국의 재야단체에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그가 부친의 후광을 뛰어 넘어 지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 광주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