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전면개방은 한국농민과 식량주권을 포기한 선언(1)

  • 입력 2014.07.31 13:24
  • 수정 2014.07.31 13:25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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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박근혜정부가 이땅의 농민들과 한국농업을 포기하겠다는 사형선고를 선언하는 날이었다.
이동필 농림부 장관은 WTO(세계무역기구)에 9월까지 쌀관세화개방에 관한 이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농민들과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정부종합청사 앞 단식농성과 정부발표 철회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규탄집회와 수확을 앞두고 있는 벼를 갈아엎으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쌀관세화개방에 협조하였던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과 쌀전업농(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농민단체도 아무런 대책없는 성급한 정부발표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1993년 UR협정, 한국농업 말살의 시작

1993년 미국이 주도하는 WTO는 UR(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을 통해 세계는 자유무역을 위해 모든 품목에 대한 비관세조치를 철폐하고 관세화를 통한 수입개방을 강요하였다.
결국,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위와 ‘특별대우’ 조치의 댓가로 1995년 5만 1,000톤 MMA(의무도입물량) 물량을 시작으로 10년간 20만 5,000톤의 쌀수입을 강제 할당 받았다. 2004년 쌀재협상 때는 아예 매맞을까 두려워 먼저 추가유예조치를 요구하며 2014년까지 MMA 물량을 40만9천톤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2003년 WTO 각료회의 무산으로 모든 농산물 협상은 2005년 홍콩 각료회의(나주에서 대규모 홍콩투쟁 원정단 파견)가 무산될 때가지 전면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미국 등의 압력에 굴복하여 40만 9천톤까지 MMA 물량을 늘리고 마는 어처구니 없는 굴욕적인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MMA(의무도입물량)는 독약, 관세화는 쥐약

전농을 비롯한 식량주권을 걱정하는 농민들은 2014년 12월에 만료되는 40만 9천톤의 MMA 물량을 동결조치하고 추가물량을 늘리지 않는 ‘동결조치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즉, 쌀부분개방 현상유지다. 하지만, 한농연과 쌀전업농 소속의 대부분 현장 농민들은 쌀전면개방을 하면 40만 9천톤의 MMA 물량이 자동 소멸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은 탓이다.
즉, 현재의 쌀부분개방이든, 쌀전면개방이든 40만 9천톤 MMA 물량은 항구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WTO의 핵심 요구사항이 관세화와 MMA이다. 즉, 모든 교역상품은 비관세조치를 완전 철폐하고 전면 관세화를 통한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하되 관세유예를 예외적으로 인정한 ‘쌀’은 최소시장접근 즉, 저율관세 할당제인 MMA(의무도입물량)를 매년 확대하기로 먼저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다. WTO에 가입되어 있는 한, MMA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독약이고 독약을 피한다 하더라도 관세화로 갈 수 밖에 없는 쥐약을 반드시 먹게 설계한 것이다.
2003년 멕시코 칸쿤 각료회의에서 ‘the WTO Kills Farmers'(WTO가 농민을 죽인다)을 외치며 목숨을 바친 한국농민의 영웅 이경해 열사는 WTO가 MMA 독약과 관세화 쥐약으로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생계형 소규모 가족농과 영세농을 모두 말살시키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쫓겨나는 농민, 위협받는 식량자급율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시작된지 20년 동안 한국의 농촌인구는 급속하게 감소하였다.
재벌과 대기업의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선택한 한국정부는 한국농업을 철저히 희생양 삼아 수입개방 농정을 무차별적으로 진행하였다. 강제적인 농업구조조정으로 농업포기와 탈농화는 곧장 도시노동자로 전락하였다.
1994년 516만 농업인구는 2013년 284만명으로 45%가 감소하였다. 5천만 전체인구의 5.7%에 불과하다.
또한, 5천만 국민이 먹는 식량에 대한 수입농산물 의존도가 77%에 달해 있다. 즉, 우리나라 식량자급율이 23%까지 추락했다는 것은 어쩌면 무차별적인 수입개방 농정의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당연히 OECD 국가중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최하위다. 문제는 한국의 식량수입은 미국을 비롯 특정국이나 카길, ADM 등 4대 국제곡물메이저에 75%나 장악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민의 목숨줄이 외국의 국제곡물메이저의 손아귀에 넘어가 있다.
위와같이, 농촌인구 급감과 식량자급율 위기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쌀전면개방은 쌀, 보리, 콩, 밀 등의 기초식량작물에 대한 근간을 흔들어 80%대에 머물고 있는 쌀자급율마저 위협할 수 있습니다.
쌀을 제외했을 경우 식량자급율이 5%라는 사실은 그만큼 쌀이 지탱해주는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식량주권의 문제이고 식량안보적 성격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부는 쌀전면개방을 서두르는가?

복잡하지만 그 정치적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박근혜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불법부정선거 의혹으로 취약한 권력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각국을 누비는 해외순방 외교정책과 대북 강경책 구사, 진보당 정치탄압 등으로 대통령 지지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학생을 비롯한 3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에게 국가는 있는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제기하며 그동안의 해외순방 외교성과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국무총리, 장관 인사참사로 불통정치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40%까지 곤두박질했다. 집권 1년 반만에 집권 레임덕이 온 것이다.
급기야 지난 7월 3일 예정에도 없던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을 한국에 불러 하룻밤 사이에 한중FTA 올해 조기타결, 한중교역 위안화 결제수단 허용, 한반도 비핵화 등 추락하는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원맨쇼를 했지만 선물로 받은 펜더 사육비 혈세낭비만 남긴 채 중국에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한중정상회담은 최근 중국과 군사적 견제와 대립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곱게 보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한중정상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보름만에 청와대는 미국달래기에 나섰다. 그 첫번째 선물이 쌀전면개방이다.
관세율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 무역협상의 파트너인 산업통상자원부, 외교통상부도 없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혼자 긴급발표를 감행했다.


쌀전면개방은 미국에게 곳간 열쇠를 맡기는 꼴이다.

한국과 일본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계통의 쌀 주산지는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이다. 캘리포니아산 카로스 쌀은 미국내 한인 교포들에게 소비되는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과 일본을 겨냥해서 생산되는 쌀이다.
1978년~1981년까지 계속되는 냉해로 한국에서 큰 흉작이 들었을 때 전두환 군사정권은 미국의 환심을 사기위해 필요이상의 두배나 되는 미국쌀을 1톤에 661불이라는 3배나 되는 거액을 지불하고 특별긴급수입을 함으로써 미국은 엄청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이 때를 계기로 자포니카 계통의 쌀 재배면적이 증가했다가 이후 수출길을 찾지 못해 생산면적을 줄이면서 미국 농민들에게 소득보전 차원의 보조금을 감당하느라 엄청난 재정적자를 보게 되었다.
1993년 미국은 한국이 WTO 가입을 전제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강요하고 이를 계기로 쌀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의 시장개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1993년 12월 9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쌀개방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1994년 2월 15일 서울 여의도 전국농민대회에 나주농민 1,000여명이 상경투쟁을 전개하였다.
‘쌀수입개방 저지’, ‘UR협정 반대’를 외치며 대규모 농민저항을 불러 일으켰던 역사에는 이와같은 미국내 캘리포니아 카로스 쌀의 한국수출에 대한 공략이 숨어 있었다.
이토록 지난 20년간 미국은 집요하게 한국민의 식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쌀과 쇠고기를 전략적으로 영구적으로 판매가능한 마지막 곳간의 열쇠를 거머쥔 셈이다.
협상도 하기전에 미국의 품에 안겨버린 뼛속까지 친미로 물들은 통상관료들의 사대주의는 농민을 죽이고 국민을 팔아먹는 매국노나 다름없다. 2011년 11월 22일 국회에서 한미FTA가 날치기 통과될 때 최루탄으로 항거했던 김선동 전)국회의원 같은 의인이 단 한명도 없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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