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하는 삶보다는 “난 잘 될거야” 긍정적인 삶을 추구

귀농으로 제2의 삶을 꿈꾸다

  • 입력 2014.11.10 10:20
  • 수정 2014.11.10 10:51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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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사에서 여성농민으로 김혜숙씨

“좋다, 좋다, 하면 진짜 좋아지고, 잘된다, 잘된다, 하면 정말 잘돼요. 나는 안 될 거야, 비관하는 삶보다는, 나는 잘 될 거야.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행복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봉황면 황용리 신정마을. 올해 초, 봄바람이 불던 그 날부터, 자신이 심고 가꾸어온 각종 작물들을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수확해가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김혜숙(57)씨가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7년 어느 날, 그녀는 도회지의 치열했던 삶과 직장을 뒤로한 채, 나주로 귀촌했다.

남은 생애, 자신이 직접 일구고 수확한 작물들을 그동안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에서 함께 나누며, 주위의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는 귀촌하기 전, 광주 권에서 소위 잘 나가는 보험설계사였다.

“결혼 후에 광주 주월동에 살았어요. 제가 34세부터 **손해보험사 일을 시작했지요. 제가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쉽게 좌절하지 않는 성격에 매사 긍정적이라 일이 적성이 맞았나봐요(웃음). 입사 5년 정도 될 무렵, 연봉이 5~6천만원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하니, 당시엔 보험쪽으로는 꽤 유명했었죠. 이후로 약 18년 정도 일을 하며, 수백 명의 고객들을 관리했어요. 지금은 큰 딸이 저를 이어 보험사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죠”

“나이도 들어가고, 이제는 잠시 해왔던 일을 내려놓고, 시골에서 벼농사에,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하는 남편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남편이 왕곡면에서 나름 큰 규모로 배 농사를 짓거든요. 일도 거들면서, 제 나름대로 채소도 심고, 열심을 다해 농촌활동을 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마을로 내려온 지 4년째 되던 해, 그녀의 노후 계획이 차근차근 이루어져 갈 무렵인 어느 날, 오래전부터 남편의 고향이자, 부부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왕곡면 덕산리 마을 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2011년 그 해, 동수동을 비롯한 왕곡면 일대가 미래산단(현 혁신산단)의 조성지로 확정이 된 것이었다. 벌써부터 조성과 관련한 찬반세력이 편을 갈라 나뉘고, 마을 곳곳에 보상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보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랜 세월동안 일구고 가꿔온 삶의 터전을 일순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인 그녀와 남편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웃 주민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가고, 빈집은 늘어만 갔다. 자식처럼 아끼던 수 백 그루의 배나무는 뿌리 채 뽑혀나갔다. 도회지에서 핑크빛 농촌생활을 꿈꾸던 그녀의 귀촌의 꿈은 하루가 다르게 저물어 갔다.
지역발전의 일환으로 조성하는 사업에, 걸림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삶의 애환이 담긴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을 순 없었다. 몇 차례에 걸쳐 시청 시장실을 찾아 면담을 가졌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다르지 않았다. 일부 주위에서는 이러한 행동들을 두고 더 큰 보상을 바라는 이기적인 심보라며 속닥거리기도 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현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산단에 대한 각종 비리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고, 마을 주민들을 위해 조성하던 이주단지 분양 문제에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마음이 울적하고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종교였다. 전부터 종종 다녔던 다도 문성암을 찾았다. 워낙 산중이라 사람이 귀하다 보니, 공양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공양주를 자처했다. 자리에 앉아 참선을 하다보면 자신이 편안해짐을 느꼈다고.

“(참선을 하다보면) 부정적인 생각과 비관하는 마음을 가지면 잘 될 일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을거야, 좋구나, 좋다 생각하면 좋아지고, 잘될거야, 잘되구나, 잘된다 생각하면 잘 되거든요. 행복은 긍정적인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루하루 다도와 왕곡을 오가던 어느 날, 새로운 터전 마련을 위해 부동산에 토지 구매를 의뢰해놓았던 그녀에게 때 마침, 좋은 조건에 좋은 토지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늘 ‘좋다, 잘 될거야’라는 그녀의 긍정적 마인드가 그녀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준 것처럼 말이다.
봉황면 황용리 신정마을.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새롭게 이사 온 그녀와 남편을 이웃 주민들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원래 타 지역에서 이사 오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텃새가 있을 법도 하잖아요. 우리 마을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인심 좋게, 고된 일이 있으면 서로 돕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이웃사촌처럼 가깝게 지내는 정이 넘치는 마을이랍니다”

 
 
콩, 무, 고추, 배추, 도라지, 생강, 고구마 등 품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심고 재배하는 그녀는 그때그때 수확한 작물들을 그동안 자신의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 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시절 제 장래희망이 자선사업가였어요. 좀 우습죠? 그 나이에 자선사업가라니, 당시에는 정말 진지했답니다. 주위 자원 봉사 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남을 돕는 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고 하시잖아요. 저도 그래요. 꼭 돈으로만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희망의 씨를 뿌리고, 사랑으로 키워 내, 정성껏 수확하며 그 안에 행복을 담아 어려운 이웃에게 제 열매를 전달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녀는 밭농사뿐만 아니라, 점심 오후시간을 이용해 문예회관 ‘예경필회’에서 한문, 서예를 배우고 있다. 취미나 만들어볼까 해서 시작했던 서예는 작년 49회 전남 미술대전에서 입선을 할 만큼 실력이 일취월장 했다. 그녀는 이러한 좋은 프로그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긴 대화가 끝이날 무렵, 혹시 끝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냐고 물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요즘 혁신산단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지요. 이왕에 지역 발전을 위해 추진되었다면, 분양도 잘되고, 그 이름에 걸맞게 미래에 꿈을 꾸는, 지역에 혁신을 일으키는 그런 산업단지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여태 그 곳은 저와 남편에게는 삶에 애환이 담긴 소중한 터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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