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

  • 입력 2014.11.10 14:04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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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연이 아니어도 좋다. 내 동료들이 더욱더 빛날 수 있도록 조연 역할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10여년 전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열광케 했던 일본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대사다.

일본 만화가 다케이코 이노우에의 스포츠만화 슬램덩크는 당시 우리나라에 마니아를 양산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극장판 만화영화로까지 상영됐다.

슬램덩크는 각자 한가지씩의 결점이나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개성강한 아이들이 농구를 통해 팀플레이를 배우고 동료들의 장점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배워가며 성장하는 청소년 성장만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각자에게 개성강한 캐릭터를 부여한 것도 신선했다.
심지어 주인공팀과 적인 상대팀 에이스들에 대해서도 작가는 개성강한 캐릭터를 부여해 매력만점 선수로 독자들에게 어필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슬램덩크는 단순히 청소년들의 만화로 머문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이 각자 자신의 삶에 주연(주인공)이라는 것을 보여준 어른들이 봐도 되는 만화였다.

주인공이 속한 팀 중에 채치수라는 주장 선수가 있었다. 개성이 너무 강해 문제점 투성이인 팀원들을 이끌고 전국대회에 나가 시합을 하는 중에 자신에게 혼자 타이른다. “내가 주연이 아니어도 좋다. 내 동료들이 더욱더 빛날 수 있도록 조연 역할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작금의 나주를 보면 역설적으로 슬램덩크에서 나온 위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주는 독고다이가 너무나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독고다이. 사전적 의미는 일본어(tokkoutai)로 스스로 결정하여 홀로 일을 처리하거나 그런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런 의미의 독고다이가 일일이 호명하기는 그렇고, 각 분야마다 나주는 분명 넘치는 것 같다.
오직 자신의 분야가 최고고, 오직 자신만이 그 일을 해야 하고, 남들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 취급한다.

게다가 이런 독고다이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각 진영마다 존재하는 이런 독고다이는 조직을 좀먹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관계마저 삭막하게 만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독고다이는 이런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누구도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과격해지고 더욱 고립되어가도 정작 당사자는 시대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주변을 탓한다.

또 하나의 이들의 공통점은 함께 한다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것 같다.
남들이 하는 것은 시원찮아 보이고, 도무지 믿지를 못한다.

자신을 낮추고 주변을 빛나게 해주는 사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다 결국 혼자 또는 극소수만이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간다.
이런 독고다이들이 많아질수록 지역사회 풍토는 더 삭막해지지 않을까?
조금은 부족해도, 조금은 아쉬워도, 함께 보대끼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오늘 청소년들의 만화였던 슬램덩크를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세워주고 동료들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때로는 주연보다 조연이 더 중요한 사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흔히 말하는 명품조연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내가 주연이 아니어도 좋다. 내 동료들이 더욱더 빛날 수 있도록 조연 역할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지금 나주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 아닐까.
깊어가는 가을! 조연이 된다는 것. 무던히 배우고, 익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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