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남자의 행복한 향기를 찾아서

‘뚜레주르’를 통해 날마다 행복을 듬뿍 전달하는 윤현성씨

  • 입력 2015.03.31 13:58
  • 수정 2015.03.31 14:00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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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가 그 위용을 제법 갖춰나가고 있다. 고개를 젖혀야 만이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고층 빌딩들과 보기만 해도 시원한 널찍한 도로, 이 근방에 가장 높게 솟은 배메산과 그 주위를 차분히 감싸는 호수공원까지, 나주 시내라 불리는 곳에서 차를 타고 불과 15~20분을 투자하면 평소엔 날 잡고 가야했던 대도시의 풍경을 가까운 곳에서 만끽할 수 있게 됐다. 그 곳은 완벽한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빛가람동 주민센터가 들어서게 될 길목 상가 한 쪽에서 구수한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근처에는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이삿짐을 들고 분주히 오고 가게 될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이렇듯 모두가 열을 올려가며 분주한 가운데, 구수한 향기에 이끌려 온 이 곳은 평화롭기만 하다.

‘뚜레주르’. 우리말로 ‘날마다’, ‘매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왠지 모르게 낯익은 남성이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이 곳을 찾는 주민들을 반기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나주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겠다” 며, 띠를 두르고 지역 곳곳을 누볐고,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써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던 그가, 별안간 매일매일 신선한 빵을 굽는 제빵왕으로 변신했다. 여자의 변신만이 무죄는 아닐 터, 흰색 요리사 복장이 마냥 어색하지만은 않은 윤현성(40)씨. 그를 만났다.

 
 
지난 2월 26일, 내 아들과 딸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신념하나로 시작한 이 제과점에서 이른 새벽, 그의 숨 가쁜 하루가 시작된다.
대학생 시절부터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다져진 부지런한 습관과 특유의 성실함은 함께 지내는 가족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대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새벽에 우유배달 총무로 시작된 그날 하루는 낮에는 학업과, 보험일 저녁에는 과외 선생님으로, 늦은 심야시간에 야식배달로 마무리 되었지요. 주말이면 붕어빵 주는 게 그리 좋아 어릴 적부터 다녔던 교회에 지휘자로 살았구요. 이런 저런 모임의 장도 맡게 되고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이후에 학업에 욕심이 생겨 유학생활의 꿈을 준비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21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이후 아버지도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그 꿈을 접게 됐죠. 후회요? 후회는 없어요. 제 좌우명이 'no pain, no gain'입니다. 고통과 고난 없인 얻는 것도 없어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큰 즐거움입니다”

지금에야 업무를 시작한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고도의 실력이 요구되는 제과를 완벽하게 내놓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전문 제빵사 분들의 도움을 빌리긴 하지만, 정직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앞서간다고 자부한다.

그는 뚜레주르. ‘날마다’, ‘매일’이라는 의미 그대로, 그날 만든 빵은 반드시 그날 다 소비한다는 철칙을 따른다. 그러나 더욱더 특별한 것은 그는 남은 빵을 처리하는 과정에 있다.
그는 제 가격에 80%를 받을 수 있는 본사 반품절차를 따르지 않고, 관내 금성원, 백민원, 지역 경로당을 매일 찾아, 직접 맛있고 신선한 먹거리를 전달해 드리는 선행을 펼치고 있다.

“경로당이나, 복지시설에 입소하신 어르신들은 맛있는 음식들을 드시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우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셔서 못 드시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시 의원 예비후보시절 지역 어르신들을 많이 찾아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선거법상 따듯한 밥 한 끼조차 사드릴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지금 와서 이렇게 빵과 쿠키를 직접 어르신들께 드릴 수 있게 되니, 너무 기쁘고 보람된 마음이 들지요”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러한 선행과 더불어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 중에 있다. 이른바 오는 4월에 한전 본사에서 직원들과 주민들을 문화생활을 위해 한 달에 2회에 걸쳐 시행되는 영화 상영 날짜에 발맞춰 서울우유와 협의를 거쳐, 상영관에서 빵과 우유를 무료로 주민들에게 나눈다는 계획이다. 돈으로 환산하자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지만, 그는 “이른 새벽부터 자신이 흘린 땀으로 만든 빵을 지역 주민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은 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며 뿌듯해했다.

“딱 50살까지 열심히 벌어서 이후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경치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며 여행하는 것이 최종 꿈이자 목표에요. 가끔은 주위에서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계셔요.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사는걸까’ 라구요. 글쎄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모든 일에는 정해진 순서가 있듯 저는 아직 젊으니까 열심히 소신껏 일해야죠(웃음)”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최종목표를 이야기 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정당에 소속된 젊은 일꾼으로써 자신만의 소신 있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작년 선거 시즌에 예비후보 이후 낙천의 고배를 마셨던 솔직한 심정과, 새로운 다짐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서민 곁에서 소신과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정치인의 표상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치인 윤현성의 행보에 대해 묻자, “나주사회에 자신이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마땅히 그리 해야할 것”이라고 소탈하게 답했다.

어찌됐든 그는 현재 ‘빵을 굽는 남자’다. 빵 굽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빵을 구워낼까. 어쩌면 빵을 굽는 사람은 구수한 향기 가득한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오늘 만났던 현성씨는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빵보다 더욱 더 행복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빵에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끼도록 행복한 향기를 듬뿍 넣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빵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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