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면 도곡리에 언니들이 떳다”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언니네 텃밭’

  • 입력 2015.04.06 14:45
  • 수정 2015.04.06 14:47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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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진달래가 제마다 빛깔을 뽐내자, 그걸 시샘이라도 하듯 하얀 벚꽃이 만발해 시골 뒷산을 물들여가고 있다. 그렇게 봄이 찾아왔고 비닐하우스 월동채소는 수확이 한창이며, 배꽃이 움트는 과수원은 절지와 고정 작업을 앞두고 정신이 없다. 이맘때쯤 농촌 속 풍경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다시면 동곡리에 사는 언니들은 작업장에 둘러 앉아, 박스를 한 무더기 쌓아놓고 각종 채소 가 담긴 꾸러미를 열심히 담는 중이다. 연이은 함박웃음을 짓는 걸 보니 여간 즐거운 일이 있나 보다.

 
 
유난히 초록빛을 띄는 시금치, 하얗게 맑은 두부, 거기에 먹음직스러운 달걀과 구수한 들기름 냄새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벌써부터 푸짐하게 차려진 시골 밥상이 머릿속에 떠올라 입안엔 군침이 돈다.

두부, 유정란, 갓 물김치, 취나물, 시금치, 쪽파, 들기름, 엿기름, 가래떡 등 10여가지의 반찬거리가 시원한 아이스 팩이 담긴 박스 안에서 가지런히 보금자리를 틀고 마지막 테이핑 작업을 마치면, 비로소 맛있는 반찬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네 식탁으로 올라갈 최종 준비를 마친다.

생활 속에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함으로써 농촌의 식량위기를 대응하고, 세계 각국과 FTA타결 등으로 갈수록 위태해져만 가는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2009년,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 주관아래, ‘우리 텃밭’이라는 명칭으로 강원도 횡성에서 시작 되어 현재 ‘언니네 텃밭’으로 개명된 이 텃밭사업은 전남에 5곳, 특히 나주에 2곳(다시, 노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국 16개 공동체에서 여성농민 100여명이 함께 하고 있는 언니네 텃밭은 영양이 풍부한 제철 채소, 과일, 곡식 등을 생산해낸다. 제철 텃밭 농사다보니, 석유 등의 에너지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있어,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 해 환경보호 활동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텃밭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품은 무농약 재배라는 점이다. 대량 생산, 판매보다는 소비자 개인의 식탁에 올라가는 반찬거리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여타 농약이나, 약품 사용 없이, 친환경로 재배한 무공해 식품이다.

“대형 마트에 수입산 식품들이 범람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다보니,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죠. 수입산 식품들은 장거리 운송을 대비해 대부분이 방부제나, 약품처리가 되어 있어 자칫하면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동곡리 마을 언니네 텃밭 홍정순(69) 대표가 말했다. 그녀는 ‘정직하게 농사짓고, 제 값 받고 판매하자’는 신념을 가지고 젊은 시절, 여성 농민회 활동을 주도했던 오랜 벗들과 2013년부터 언니네 텃밭을 가꿔 나가고 있다.

제철에 맞게 그때그때 수확한 먹거리를 도시에 있는 내 자식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매주 화요일 텃밭 동지들과 함께 모여 정성 꾸러미를 담는다. 상자에는 소비자들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와 함께, 식재료들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짤막한 레시피를 함께 기재한 편지와 간식거리를 동봉해서 보낸다.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꾸러미는 초보 주부들에게는 든든한 친정 엄마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소비자들은 인터넷에 후기를 남기며, 시골 언니들과 소통한다. ‘보내주신 유정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서 깜짝 놀랐다’는 후기에 언니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제철꾸러미의 참맛은 철따라 바뀌는 다양한 품목에 있다. 꾸러미를 꾸준히 받으면 1년에 100가지가 넘는 품목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꾸러미만의 매력이다. 봄에는 냉이, 취나물, 돌미나리와 같은 산나물이, 여름에는 봄에 씨앗 뿌려 기른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알곡이 여무는 가을에는 영양 가득한 잡곡을, 겨울에는 말린 나물들과 곡식을 재료로 한 전통가공음식까지, 손가락으로 세기도 부족한 다채로운 먹거리를 사시사철 내내 맛볼 수 있다.

“저희 언니네 텃밭을 애용해주시는 소비자 회원분들께 너무 감사하지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서 우리 것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저희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분들과 우리는 이제 한 식구입니다”

가족이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를 말한다면, 식구는 한 집에서 한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한집에 살지는 않지만 그녀들이 먹는 시골밥상 그대로 회원 가정으로 보낸다. 그렇게 시골 언니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키운 자식 같은 먹을거리를 통하여 도시 식구들을 만난다.

최근 혁신도시 내 텃밭 분양이 한창이다. 도심 속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소소한 먹거리를 창출해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로컬푸드를 널리 홍보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행여나 개인과 특정단체의 과욕과 이기심에 텃밭이 소수의 이득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진 않을지 염려스럽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기회에 언니네 텃밭을 벤치마킹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본다. ‘한 식구가 된다는 것’ 이 시대 텃밭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가 바로 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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