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6일

――채플린처럼

  • 입력 2015.04.20 14:44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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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결국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합리적인 사고를 잃은 호모사피엔스의 팽목 앞바다
건너온 저 능선은 발자국들 목소리들 웃음들을 기억할까
땀 배인 이마와
아비규환을 움켜쥐었던 두 주먹과
가슴 졸이던 지붕들……
어느 날에는 종말에 대해 묻기도 하는가,

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포장지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꽃을 예배하고
별을 기념하고
바람의 숨결로 사랑을 노래하던 짐승들,
주식등락을 흘깃거리고
우익일 수도 좌익일 수도 없는 민주적인 건축술로 빌딩을 지어올리고
아직 증오할 무엇이 남아서
멸망을 비유하듯 뒷골목을 돌아갈 것인가,

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도둑고양이가 또 새끼를 쳐서 돌아다녀도
한줌의 일용할 역사는 냉장고에 가득하다고
느긋하게 눈을 감으며 모차르트처럼 손가락이나 까닥까닥 퉁기며
오늘도 태양빛에 모서리가 닳은 슬픔을 내다 말리면서
추앙받고 싶어서 잔뜩 어슬렁거리면서
사람의 말[言語]로는 화엄을 이룩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제는 제발, 이따위 시로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파도는 파도를 모르고
짱돌은 짱돌을 모르고
기도는 기도를 모르는
더 이상 동행할 수 없는 바다는 먼 바다,
축복할 영혼을 잃고 해조음조차 들려오지 않는,

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촛불을 켜고 모으는 손끝을
야합으로 저울추를 들었다 놓는 거대한 밤을
우주의 돌층계를 놓는 첨단의 곡예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면 가뭇없이 스러지던 포물선을
남루한 입술은 무어라 증언할 것인가,

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얼마나 더 아프고 고통 받아야 적막해질까
수평선은 무엇을 데리고 봄소풍을 가야 할까
흔적도 없는데 증오는 시퍼렇고
노래가 살지 않는데 춤을 기억하는 몸뚱어리를 끌고
나는 또 가파른 눈치로 살아야겠지만,
비명이 소용돌이쳤던 팽목에게 가진 열쇠를 모두 던져버릴 수도 없는

삶이 아니지만, 스러지지 않는 물살이다
어느 가슴에도 안겨줄 수 없는 물꽃은 갯바위
그리하여 옛날 옛적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됐던가,
다시 물을 수도 없는
까무러치면서, 까무러치면서 날아가는 새들을 따라
손을 흔들어주다가도
슬그머니 거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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