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갑질

  • 입력 2015.07.13 11:15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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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주지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크게는 행정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아 진행되고 있는 시민강좌부터 시민단체가 자체예산을 세워 진행하고 있는 사랑방 강좌, 여기에 기관이나 단체에서 비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각종 강좌까지 더하면 일주일이 모자랄 판이다.

취재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주간일정을 정리하다보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각종 강좌가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과연 나주는 인문학 열풍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시민소통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민소통강좌, 나주공부방에서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강좌, 나비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민아카데미, 역사도시사업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각종 도시재생과 관련된 시민강좌,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한역사문화 강좌,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각종 강좌와 문화행사, 문화원이 주관하고 있는 생생문화제 체험, 향교에서 진행하다 최근 마감한 나주 이야기꾼 양성학교 강좌, 우리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매주 수요일 진행하고 있는 차모임 아카데미, 농협 주부대학이나 나주시 농업정책과에서 생활개선회와 실시하고 있는 각종 요리강좌 또는 여성전문가 양성 강좌까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나주는 강좌가 넘치고 넘쳐난다.

늦공부가 터진 셈이라고 해석하면 되건만, 이런 와중에 계속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은 필히 필자의 삐딱한 성격 탓이라고 인정해야겠다.

바로 나주시가 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인문학의 갑질이다.
정작 인문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시민역량 강화 또는 내적 발전일 것이다.
다양한 아카데미 강좌를 통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지역의 역량을 끌어내는 것이 아마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나주시가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민들의 주체역량 강화보다는 시민들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저 예산을 세워서 외부 전문가들에게 용역이라는 것을 통해 맡기고 시민들에게 와서 들으라는 것이다.
정작 지역민들의 주체역량 강화는 나주시가 마련한 다양한 강좌를 통해 대상화된 수강생으로서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교육사업을 계획하고, 지역민들의 이해와 요구에 맞는 강좌내용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짜고 또 그에 적합한 강사를 찾는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것이 진정한 내부역량 강화다.

정작 중요한 역량강화 사업인 것은 외부인들에게 다 맡겨버리고 내적역량을 키워야 할 시민들을 대상화시켜버리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시민강좌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유명 인사들의 최고의 강의를 마치 시민들이 공짜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처럼 호도하는 분위기 역시, 역겁다.

공짜가 아니라, 나주시가 혈세를 퍼주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나주에는 여러 단체가 자체 회비를 통해 작은 예산으로 몇 년째 양질의 인문학 강좌를 계속해오고 있는 곳도 많다.

나주시 예산으로 누군들 못할까?
자체적인 인문학 강좌를 이끌어왔던 이들이 최근 나주시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고 한숨을 쉰다. 교통비만 지출하면서 인맥과 명분으로 외부강사를 초빙해 운영해왔던 각종 공부방들이 최근 나주시 예산으로 진행된 각종 강좌 때문에 강사비만 크게 올랐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나주시가 인문학을 놓고 갑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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