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두 번의 위대한 혁명적인 선언2

  • 입력 2015.09.07 10:46
  • 수정 2015.09.07 10:47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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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형구 작가
▲ 강형구 작가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양생은 자기를 귀중하게 여긴다고 적고 있다.
또 열자의 양주편에 '백성자고(伯成子高)는 털 하나로써 물(物)을 이롭게 하지 않으려고 나라를 버리고 숨어서 밭을 갈았다.

우 임금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기에 온몸이 말랐다. 옛 사람들은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해도 응하지 않았고, 천하를 다 주어 한 몸에 받으라해도 받지를 않았다.
 
사람마다 털 하나라도 손해 보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으면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이다고 적었다. 여기에 양주의 진면목이 있다. 그러기에 맹자는 양주는 자신을 위해서는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해도 행하지 않는다고 비평했다.

그렇다. 자신만을 위하여 돈, 명예, 권력, 폭음, 육욕, 쾌락, 취미 따위에 결코 털 하나도 쓰지 않는 자들이 바로 양주였다. 귀 있고 눈 있는 자들이여 보아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세상을 위한다는 자들은 결국 자신의 돈과 명예와 권력과 지위와 탐욕과 제 자식의 영화로운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척만 하였다는 것을 역사는 너무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양주는 침묵으로 사납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일화를 통해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바로 삶의 진정성을 그들은 획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묵자는 묵자대로, 유자는 유자대로, 양주는 양주대로 분명하게 자신들의 삶의 논리를 투철한 실천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그 흔들림 없는 실천 속에는 깊은 수양을 통한 인생의 경지가 엿보인다. 누구처럼 천하의 정의를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고작 서푼어치도 아니 되는 제 이름이나 제 지위나 기름진 밥자리나 권력이나 제 계집이나 제 자식의 명리나 구해버린 추저분한 속물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제 살길만을 찾아 어려 애초에 구직만을 위해 살아온 그리고 가까스로 얻은 직장과 그 직위의 안전과 승진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영혼 없는 족속으로 살아가는 소위 이 땅에서 내로라는 철밥통 직장을 가진 먹고 살만한 자들이 그들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결코 그러한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맹자는 먹고 살기위하여 직장을 구해야 한다고 하면 문지기 정도나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실상은 부당한 세상에서 먹고 살만한 자리에 있으면서 주제넘은 소리를 하는 것은 실없는 짓이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세상이야 어찌되건 오직 제 지위와 밥자리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은 그때는 소인배, 혹은 무지한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해 버렸지만 지금의 그들은 어엿한 민주 시민이 되었다.

그들 민주 시민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비판해내지 못하고, 오직 제 밥자리와 박사네 교수네 학자네 문인이네 뭐네 하는 그럴듯한 지위만을 위해 살아온 자들의 허깨비 같은 명성에 기대어 그들 불러다 강연 들으며 비싼 세금 주면서 그 이름에 기대어 덩달아 위세 떨면서 제 상전의 비위를 거스르는 자들이나 혹은 제 부류를 비판하는 자들의 그 비판은 도무지 한마디도 견뎌내지 못하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악다구니를 쓰는 전혀 수양이 아니 된 노예근성에 절은 자들 또한 많으니 세상이 아주 희망이 없게 되어버렸다.

모두 다 자기가 가진 것들이 전부라고 여기고 그 조그마한 전부를 지키고 신장하는 데만 혈안이다.
소리는 많은데 언제부터인가 쓸 소리는 없어져 버렸고 고작 자구해석이나 치중하면서 대의(大意)를 생각하려하지 않고 누구 호위무사가 되어 조용히 입 닥치라고 칼 찬 왜놈 순사처럼 눈을 부릅뜨고 악다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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