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2.6.13 월 14:25
> 오피니언 > 칼럼
E.H.카(Edward Hallett Carr) 역사란 무엇인가! ‘위안부 합의’에 대한 관점
김철민 시민기자  |  najunewsn@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1.0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역사가 E.H.카(1892년 런던출생)는 ‘WHAT IS HISTORY?(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시했다.

이것은 우리가 좀더 꼼꼼히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상식적인 견해에 따르면 모든 역사가들에게 똑같은, 말하자면 역사의 척추를 구성하는, 어떤 기초적인 사실이 있다”라는 전제하에 명심할 두 가지 사항을 피력했다.

첫째로, 역사가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와 같은 사실들이 아니라는 점이다.여기서 사실이란 함은 실재의 역사적 팩트(fact)를 의미하며, 의아스럽게도 역사가들이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언급을 한 것이다.

그 근거로서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하우스먼(1859년~1939년. 영국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라는 언급을 통해 역사가에 있어 역사는 “그 자체의 범주가 아니라 원료라는 범주”라고 확정짓고 있다.

즉, 역사는 역사가의 선험적 결정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사실의 판단은 상당부분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에 기인하며, 그 역사적 사실 자체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간결하게 “흔히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들 말한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딱딱한 속알맹이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가의 해석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오류이지만, 그러나 뿌리 뽑기는 매우 어려운 오류이다”라는 말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가의 선택은 당연히 분리된 대상이며 합치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결과적으로 “역사적 사실로서의 그것의 지위는 해석(interpretation)의 문제에 좌우될 것이다.” 동시에 “이 해석이라는 요소는 모든 역사적 사실에 개입한다”는 서술로, 역사가의 해석과 역사적 사실의 필연적인 상호작용의 측면을 도출하였다.
 
“알려져 있는 소수의 사실이 역사의 사실 전부이기 때문에 과거에 관한 역사의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 사이의 성가신 구별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로, 역사적 사실에 있어 정확한 확인은 불가능하며, 겨우 남겨진 소수의 사실이 전체로 보여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그렇다면, 모든 역사는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크로체(1866년~1952년. 이탈리아 철학자, 역사가)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고 선언했는데, 그것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평가란 역사가의 현재적 주관의식, 즉 현재를 반영하여 역사적 사실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현재의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결국, 역사가의 역사에 대한 기술은 현재의 반성의식을 변증법(정.반.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그것 또한 가변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의 정신속에서의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한다”라는 말로, 역사인식에서 주관적 인식론이란 양식까지 등장하게 되었다.그럼 역사는 역사가의 재구성능력의 산물에 불과하므로 합의된 기준도 유효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한가?
 
자칫 이런 식의 결론은 역사에 있어 심각한 회의주의 빠질 우려가 있다. 역사의 정립에 있어, 역사가의 역할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면,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내고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역사가의 현재와 과거의 상호작용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의식이 중대하다 하겠다.

즉, 한 집단 또는 민족국가에 있어 “자신들만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유명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정부는 12월 29일(2015년) 한.일간 위안부 협상 타결을 했다고 발표했다. 현정부로서는 국내 반발이 예상됐지만 일본 아베총리의 재임중에 양국간 외교난제를 종결지어야겠다는 의지가 상호협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협상 타결전 당사자인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충분한 사전설명이 없었다는 점과 타결조건이 10억엔(100억원/한화)의 보상(위안부피해자 재단설립) 및 그에 따른 조건으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전. 철거(일본정부는 합의사항, 정부는 사실무근이라 주장)라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지탄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E.H.카의 역사의 정의는 역사가와 그 사실들의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끊임없는 과정(a continuous process)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인식이 끊임없는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자!

김철민 시민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비주얼뉴스
가장 많이 본 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주소 : 우)58217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그린로 369 (화정프라자 3층) | 대표전화(061)332-4112 | 팩스(061)332-4113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다00009  |  등록연월일 : 2006년 12월  |  발행인·편집인 : 박선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재
Copyright © 2013 나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ot webmaster@naju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