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의 미래 8

  • 입력 2016.01.11 11:15
  • 수정 2016.01.11 11:16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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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있어줘서 고맙다
‘환웅이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고 여러 신들과 세상을 다스렸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어떤 나무였을까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신단수가 신성하고 당시 사람들의 기원을 담고 있던 소중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나주읍성권에도 나주인들의 삶과 함께 해 온 ‘나주의 신단수들’이 있다.

나이든 나무만큼 나주가 오래된 도시임을, 오랫동안 지켜온 삶터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드물다. 나주를 오랫동안 떠나 있던 사람들이 찾아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며 ‘지키고 있어줘서 고맙다’라고 이야기하는 마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항상 그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내고 서 있는 ‘나주의 신단수들’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내야 할 것인가?

이분이 나주시네요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의 연탄재시로 알려진 안도현 시인이 나주를 방문해 새벽에 나주고샅길을 걷고 목사내아 금학헌에 숙박하러 마당에 들어서면서 벼락 맞은 팽나무 이야기를 듣고는 “이분이 나주시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시인의 눈에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며 나주 역사를 지켜보았을 팽나무에서 나주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읍성권에는 이렇듯 나주 역사와 함께 해 온 나이든 나무가 여러 군데에 살아 있다. 요즘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금학헌의 벼락 맞은 팽나무, 금성관 뒤편에 서 있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한 쌍,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하는 나주향교 대성전 앞마당의 은행나무, 나주향리 세력 중 최고 권력자인 호장이 근무하던 주사청 터에 남아 있는 소나무, 서성벽 밖으로 시구밖 마을사람들을 지키는 당산나무, 금성관 뒷길 사창거리 사람들이 소원을 빌던 당산나무, 서성벽에 집짓고 살던 사람들이 100년의 삶을 꿈꾸며 성벽에 기대어 심었던 감나무가 주인공들이다.

나주의 신단수들
읍성권의 중심에 웅장한 관아들이 즐비하게 복원된다 해도 그 어디에선가 사람들은 오래된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오래된 시간을 찾고 이야기를 찾고 사람을 찾는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보러 간다는 것은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 관광 트랜드로 떠오른 ‘스토리 관광’이며 ‘속살 찾기’이다.

벼락 맞은 팽나무가 사라진 금학헌을 상상해 보자. 물론 금학헌의 이야기만으로도 나주를 느낄 수 있지만 벼락 맞은 팽나무에서 소원을 빌어야 제대로 여행의 묘미를 찾게 된다. 이렇게 나만의 이야기를 금학헌에 남겨 나의 추억이 되고 다시 찾아야 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금성관 뒷길의 당산나무는 어떠한가? 당산나무 앞에 놓인 제단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파여 있다. 많은 여인들이 아들 낳기를 기원하던 흔적이다. 이처럼 기가 막힌 이야기가 당산나무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소원을 빌게 만들고 있다.

주사청의 소나무는 나주읍성 안에 유일하게 있는 해송으로 용트림하는 듯한 그 모습 때문에 오래전부터 ‘용나무’라 불러 왔다. 500년 세월동안 몸을 뒤틀어 온 그 생명력과 이야기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서성벽 밖 나주천변에 서 있는 당산나무는 121년 전 나주수성군과 동학농민군의 서성문 전투를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고, 성벽 위에 집이 들어서고 철거되어가는 세월을 모두 함께 했다. 지금은 누구도 나무에 소원을 빌지 않지만 한때는 마을의 안녕을 빌던 수호신이었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서성벽에 기대어 서 있는 감나무는 내 땅이 없어 성벽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이 담겨져 있고, 성벽 복원 때문에 떠나야 했던 그 사람들의 흔적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위상을 자랑하는 나주향교 대성전 마당의 은행나무는 어떠한가?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이야기로 한순간에 나주향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그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절대 잊을 수 없는 향교여행이 되는 것이다.

오래된 나무이야기를 만들자
나주 역사를 안고 우리 곁에 서 있는 나주의 신단수들을 한낱 나무일 뿐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보다 나주를 오랫동안 지켜 왔노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나무들은 공통적으로 소망을 담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무엇인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터에 기념식수를 하곤 한다. 그렇게 심어진 나무들이 수 백년 세월을 지키고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오래된 이야기, 나주만의 이야기를 이제는 우리가 다시 이어가야 할 시간이다.

나주 신단수들의 이야기를 나주만의 상품으로 만들어내고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잘 보살펴야 한다. 그렇게 오래된 도시의 이야기는 또 세월을 쌓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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