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대 청춘들이여

  • 입력 2016.02.15 11:24
  • 수정 2016.02.15 11:25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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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재 기자
▲ 이신재 기자
2월, 졸업시즌이다.
10년 전, 고등학교를 막 졸업 했을 때의 기억이 난다. 그토록 고대하던 졸업장과 꽃다발을 한 아름 받아든 채 정든 교실을 떠나려니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교문 밖을 나선 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곤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이 그리 길진 않았던 것 같다.

너나할 것 없이 파란만장했던 학창시절 추억을 뒤로하고 바야흐로 자유의 시대가 도래라도 한 듯 명찰대신 민증을 들이밀며 시내 어느 술집에 당당히 입성해 비로소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왁자지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지난 달 1일 늦은 오후시간 대 지인들과 신년회 겸 자리를 갖기 위해 집(대호동) 근처 술집을 찾은 나는 엄청난 인파로 북적이는 이 곳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주에 젊은이들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알고 보니 이들 대부분은 97년생. 그러니까 올해로 스무 살, 법적으로 주류 구매가 가능한 나이가 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갓 20대에 접어든 청춘들이였다.

떼를 지어 곳곳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기자가 줄을 이어 입장을 기다리는 서울 강남 번화가 한복판을 보는듯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워 쓸쓸히 편의점 신세를 지고 돌아서는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설렘 그 자체였다.

스무 살(만 19세). 법을 기준으로 수치를 계산해보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어찌됐든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친구들과 당당히 술잔을 기울일 수 있으며, 이성친구 손을 잡고 대학캠퍼스를 거닐며 두근두근 가슴 뛰는 낭만을 누릴 수도 있다. 말로나마 미지의 영역이었던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낯 두껍게 관람할 수 있으며, 일확천금의 기회인 로또복권을 구입해 기분 좋은 일주일을 보낼 수도 있다. (교통카드와 차표를 성인용으로 구매해야하는 것은 덤이다.)

이뿐인가? 남자라면 나라의 부름을 받고 2년 남짓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진짜 사나이를 만들어주는 그 곳(?)도 갈 수 있고, 내 손으로 직접 이 나라의 위정자를 뽑는 투표권 행사도 가능하다.

나열하자면 입 아플 정도로 스무 살은 이처럼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시기이면서도 자신의 미래와 진로를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해야하는 책임감이 동시에 부여되는 삶의 첫 전환점이라 할 수 있겠다.
미성년자라는 명찰을 떼면서부터 찾아오는 바야흐로 자유의 시대, 이제부터는 늘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아마도 몇 년 후면 ‘세상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막 30대에 접어든 필자가 인생 선배를 운운하며 감히 이들 누군가에게 훈수를 두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루를 마다하고 쏟아지는 수십 권의 인생지침서에 비하면 미비한 필력일지 모르나 이 지역에서 앞서 나열한 몇 가지 혜택을 누려본 사람이 전하는 애정담긴 격려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언제부턴가 ‘3포시대’라는 단어가 20대 많게는 30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 경제적, 사회 심리적 부담 등으로 인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연애를 못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어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됐으며 그러다보니 출산은커녕 혼자 사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는 3단 논리가 안타깝게도 절묘하게 이어진다.

3포는 그나마 양반이다. ‘주택, 취업’을 포함한 5포, 거기에 ‘인간관계, 희망’을 더하면 7포, 심지어 ‘건강, 학업’까지 9포.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것은 다 갖다 붙인 포기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더 이상 다른 동네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3~9포시대’라는 듣기도 거북한 이 신조어는 앞으로 이 같은 험난한 사회에 살아가게 될 지역의 20대 청춘들 아니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공통된 질문이자 장차 해결해야할 중대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그 질문에 응답해야할 때가 왔다.
응답의 첫 단추는 사람과 사람사이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인정(人情)’과 ‘애정(愛情)’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급속한 산업화와 현대화는 우리 사회를 무한 경쟁의 시대로 초대했다. 물론 긍정의 측면도 존재하겠지만 상대방을 어떻게든 밟고 올라서야만 비로소 내가 승리하고 성공하고 재산을 불릴 수 있다는 악질스런 경쟁심리는 인정의 실종과 나아가서는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기 쉽다.

또한 지역사회 발전과 관련해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마치 다 큰 어른들의 몫이며,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저 나몰라라 식 무관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은 반쪽자리 지역발전을 초래할 뿐이다.
이는 비단 20대 젊은이들만의 과제는 아니며,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풀어야할 숙제다.
지난 달 인기리에 종영한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쌍문동 이웃들이 보여줬던 따듯한 인정과 애정담긴 모습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사소한 것도 서로 나누고 힘들 땐 의지하며 살던 그들처럼 우리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인정을 나누며 지역사회 애정과 관심을 갖길 바래본다.

언젠간 나주 지역사회를 이끌어가게 될 지금의 20대 젊은 청춘들에게도 함께 응답하자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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