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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들려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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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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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시 문화예술팀장
    윤지향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

조선 후기에 서울에는 전기수가 있었다. 소설을 직업적으로 읽어주던 이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인기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백성들은 전기수 곁에 둘러앉아 해지는 줄 모르고 그들의 이야기 솜씨에 울고 웃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며 소설 쓰던 사람들도 덕분에 먹고 사는 것에 보탬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조선의 문화 생산 유통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주에도 전기수는 아니지만 옛 이야기를 100가지나 넘게 구술하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이분이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귀동냥하게 된 사연을 보면 재미있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동네 사랑방에 남정네들이 모여앉아 긴긴 날들을 새끼를 꼬고 농사준비를 하며 보냈는데, 그 사이에 끼어 이야기를 들려주며 겨울을 나던 전문 이야기꾼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젊을 적에 자기 동네에 왔던 사랑방 이야기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기막힌 기억력과 언변으로 재생해낸 것이다.

이런 전문 이야기꾼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한 동네가 아니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팔았다고 하니 대단한 전문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국의 동네를 들를 때마다 이야기가 추가되고 또 추가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 가짓수는 늘어만 갔으니 이들이야말로 전국의 이야기를 유통하던 문화인이 아니었을까?

서울 종로구가 이 전기수를 부활시킨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언론보도를 본 적이 있다. 명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로를 누비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참여해보지는 않았지만 듣기만 해도 왠지 그곳에서는 행복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주 이야기 할머니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한국국학진흥원이 추진하는 재미있는 사업이 있다. 일명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으로 나이든 여성들이 유아교육기관에 파견되어 옛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인력을 양성하는 것인데, 전기수는 아니지만 세대를 연결하고 옛 문화를 전승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런데 전국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각 지역별로 많은 인원이 양성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주시는 올해 자체적으로 나주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주 이야기 할머니 양성사업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나주의 전기수인 셈이다.

조금 다른 점은 일반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동화구연처럼 포장해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주의 전설과 인물 등 나주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할머니의 음성과 억양으로 들려준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어릴 때 특별한 전기수가 필요 없이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거나 ‘옛날 우리 마을에’ ‘우리 집안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으며 자랐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세대전승, 내 지역의 문화전승을 꾀하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

그렇다면 이제 남의 이야기, 지어낸 소설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 초등학교 다닐 때 일기숙제를 하던 때 빼고는 일기든지 자서전이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은 드물다.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아주 오래 전에 금천면에서 어떤 개인의 수십 년에 걸쳐 쓴 일기장을 마주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담겨진 기록물을 대할 때 느껴지는 감정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든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이 남겨 놓는다면 세상은 온통 이야기 세상이 되고 ‘나’는 모두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이야기’가 모여 ‘동네 이야기’가 되고 ‘도시 이야기’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가 만들어지는 흐르게 되는 것이다.

자서전 짓는 도시

글쓰기야말로 놀라운 자기치유의 힘이 있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 대한 발견과 힐링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흔히 자서전이라 하면 유명인들이나 남길 수 있는 거창하고 낯선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오래된 도시의 매력은 오래된 이야기가 쌓이고 그 이야기보따리에서 이야기가 끝도 없이 풀려나오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이야기가 오래된 이야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웅 중심의, 서울 중심의 역사를 배워온 탓일까? 진짜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고 내 동네의 이야기이다.

나주가 나주다울 수 있으려면 나주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나주인들이 ‘나의 이야기’ ‘자서전’을 짓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근래의 이야기, 지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내가 살아온 삶을, 동네를, 도시를 ‘자서전’에 담아보자.

나주가 ‘자서전을 짓는 도시’가 된다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 보따리 도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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