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선 작가 ‘생각을 태워 자신을 표현하다’

인두화, 우드 버닝(wood burning)을 아시나요?

  • 입력 2016.02.29 12:05
  • 수정 2016.02.29 12:09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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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포면 ‘리안’카페.

구수하고 향긋한 커피 내음과 고급지고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와 더불어 이 곳을 다시금 찾게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무에 그려진 특별한 그림(?) 때문이었다.

처음엔 목판화이겠거니, 혹은 기계가 찍어낸 관광 휴게소에서나 볼법한 기념품일거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그 것과는 다른 정교함 그 이상의 것이 느껴졌다.

 
 
“저희 아버님께서 그리신 그림이에요. 전, 이 집 며느리구요” 바리스타인 이 집 며느리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목판화도 아니고 기념품도 아닌 이 그림의 정체는 ‘우드버닝(wood burning)’ 우리 말로 ‘인두화’라 했다.
다소 생소한 장르인 우드버닝. 단어 그대로 인두를 활용해 나무를 태워서 그리는 그림이라고.

어감 상 자칫 외국 문화라 생각할 수 있고,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옛 부터 이미 한지와 대나무, 가죽, 박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화로에 달궈진 무쇠 인두기를 이용해 다양한 무늬와 자연을 그려낸 옛 조상들의 작품들이 오랜 역사를 가늠케 해준다.

 
 
이 집의 아버님. 이기선(69)씨는 그저 취미생활로 2년째 인두화를 그려오고 있다.
산포면 출신의 기선 씨는 산포국민학교를 졸업해 광주에서 중·고교를 다니고, 한국방송통신대-광주교대 미술대학원을 거쳐 교직에 입문한 뒤, 이후 모교인 산포초의 교사로, 아울러 수도권에서 40여년 가깝게 미술 교사로 교직생활을 해왔으며, 현재 명예퇴직 후 고향인 산포로 돌아와 살고 있다.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해왔고, 그의 아들 역시 산포초 출신이며, 손자 또한 재학 중이니 3대가 이래저래 산포초와의 인연이 깊다.

기선 씨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약간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래는 꿈이 화가였답니다. 미술 시간 그림을 그리면 제일 잘 그린 작품들을 선정해 교실 뒤편에 전시해두잖아요. 당시 거의 제 그림이 걸려있었던 것 보면 그래도 나름 소질이 있었나봅니다.
 
은사님도 늘 ‘소질이 있다’ 말씀해주시곤 했죠. 은사님이 전출을 가실 때, 모범 사례로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시겠다며 제 그림을 챙겨가시던 모습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이처럼 어릴 적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내며, 이후 미술 교사가 된 그는 주로 수채화 장르의 작품을 주로 그려왔다고.

그러던 2007년 어느 날, 관광지 휴게소에서 송판에 그려진 그림을 기념품으로 팔던 광경을 무심코 보게 된 기선 씨.

인두화와의 첫 인연은 그때부터였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퇴임 후에 취미 생활로 한번 해보자 싶어서 도전했지요. 처음에는 나무 합판을 가져다가 전용 인두가 아닌 납땜용 인두로 시작을 했어요. 정보 구하기도 힘들고 기본 지식도 없다 보니, 흉내라도 내볼까 싶어서 시작한거죠.”

 
 
 
 

“당시 초보라 전용 인두(버닝펜)으로도 어려울 텐데, 납땜용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과열로 휴즈가 나가서 고장나기를 수십 번 반복했어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한국버닝문화협회’가 있더군요. 이후 수원에 있는 교육연수원을 찾았어요.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게 된 것이죠.”

기선 씨가 인두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지는 불과 2년, 하지만 그동안의 연륜과 타고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지금의 정성 가득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본인만의 작품들을 하나 둘 탄생시켰다.

완성된 작품들을 주로 가족들과 친한 지인들에게 선물한다는 기선 씨. 혹시 작품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법도 한데.

“간혹 사례비 정도로 주시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작품을 판매해 이득을 남길 욕심은 없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취미생활이고, 취미가 직업이 되면 괜한 부담이 될 것 같아요. 나이도 있구요. 원래 그림을 좋아해요. 저는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낀답니다.”

 
 
 
 

 

 

 

 

 

 


취미생활치고는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이기에 개인 전시회나 후견인 양성 등에 대해 묻자, 기 선 씨는 “아직도 멀었죠. 몇 년 더 공부해야 해요. 아직 개인 전시회는 생각도 안해봤어요”라고 겸손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 노력해서 제대로 된 인두화 전시회를 열어보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했다.

하나의 인두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하루에 10시간 씩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을 꼬박 작업하는 인내와 집중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요즘은 부쩍 체력적 한계를 느낀다는 기선 씨.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취미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올해 아버님 연세가 69세시니까 내년 이면 칠순이시잖아요? 칠순 잔치 겸, 전시회도 열렸으면 좋겠네요” 이 집 며느리가 활짝 웃으며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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