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fact)과 의견(opinion)

  • 입력 2016.03.28 11:59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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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모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 재학시절 각종 전공과목에 임했던 필자에게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학창시절 글 꽤나 쓰는 학생으로 각종 백일장 대회에 상장 하나정도는 꼭 챙겨갔던 필자에게 대학레벨의 글쓰기, 특히 신문기사 작성은 무척 난해했다.

‘취재와 보도’라는 전공수업은 매 강의마다 학교와 관련된 기사를 써서 제출해야 했으며, 담당 교수는 필자에게 매번 똑같은 지적을 반복했는데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해야할 기사에 왜 자신의 의견과 주관이 들어가 있냐는 지적이었다. 심지어는 그것은 기사가 아닌 네 자신의 일기라 빗대며 씁쓸한 핀잔을 건네기도 했다.

사실과 의견. 상반된 두 개념은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끊임없이 필자를 괴롭혔다.
비슷한 맥락의 수업이 하나 더 있었다. ‘저널리즘 비평’이라는 이 수업은 이전에 보도된 신문 기사를 읽고 각자의 시선으로 비평하는 내용이었다.

고급 진 단어선택, 화려한 수식어, 저명인사의 문구 인용, 적절한 대안제시 등으로 치장된 베테랑 기자들의 기사에서 흠을 잡아내기란 좀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수업의 담당교수 또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기사는 좋은 기사로 볼 수 없다”며, “이러한 관점은 기사를 읽고, 비평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지역신문기자로 활동 중인 필자에게 두 교수의 이 같은 가르침은 결과적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적 존재가 됐고,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개인의 주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입각해 대중에게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기자가 갖추어야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덕목과도 같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 기사를 쓴다는 것은 주어진 현실적 여건으로 비춰볼 때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지역신문은 더 그렇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지역 내 각종 이해관계에 엮여 있는 사회 구성원 중 한명이고, 누구나 그렇듯 이슈를 바라보는 각자의 의견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관적 관점은 기사 내용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독자층의 흥미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사실기사는 독자가 느끼기에 정보제공측면 외에는 대체로 무미건조하기 마련인데 반해, 칼럼이나 사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기자의 의견이나 주관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극적인 제목선정과 흥미진진한 내용전개는 독자에게 대리만족과 같은 감정선에 개입하게 되고, 독자들은 점차 재미있는 신문에 길들여진다. 이는 지역신문사의 경쟁력 즉 구독자 확보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칼럼이나 사설 등 의견 기사는 신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지면을 구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을 따지고 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된 보도 기사에 있다.

칼럼도 아니고 사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도 아닌 다소 애매한 포지션의 기사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칼럼에 가까운 의견기사라고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이러한 형식을 취한다면, 즉 이른바 ‘신문의 칼럼화’가 진행된다면 결론적으로 이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공정한 언론으로 보기 힘들다.

‘알 권리’라는 공통적 가치 외에 각기 지향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는 기사는 언론이 중시하는 보편적 가치인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사실과 의견이 공존하는 기사는 독자들의 편향적 시선을 유도할 수 있고 나아가 왜곡된 여론형성을 낳게 되는 리스크를 내제하고 있다.

필자의 기자수첩도 의견기사다.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4년의 학과 수업을 거치며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던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은 언론으로써 반드시 수호해야할 가치이자 원칙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보도한다는 것. 사실과 의견을 구분한다는 것.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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