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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화가 청운 이학동 화백에게 화실을문화사랑방 이주 대책없이 비워줘야 할 형편에 발만 동동
정찬용 기자  |  najunews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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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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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만을 고집스럽게 그려오고 있는, 나주를 대표하는 미술계의 거목, 청운 이학동 화백의 개인화실이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9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며, 노인복지센터, 나주향교, 빛가람동 갤러리 등지에서 후학들을 위해 무료 미술지도를 하는가 하면 나주의 각종 행사장에서 회화 퍼포먼스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는 이 화백이 2013년부터 무상으로 사용해 오던 성북동의 20평 남짓한 개인화실 문화사랑방을 건물주의 사정으로 비워줘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나주시 성북동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조선대학교 재학 당시 의제 허백련을 비롯해 오지호와 김보현 교수로부터 서양화와 한국화를 넘나들며 폭넓게 교육을 받고 졸업후에는 일본 동경 미술연구소를 수료한 서양화가이자 교육자이다.

1944년 나주해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84년 고흥동중학교 교감으로 퇴직할 때까지 44년간 후진양성에 주력하던 중에는 일본 동경미술협회의 초청으로 미술전에 출품도 하였고, 한국 전통예술 대상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서울과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개인전만 30회 이상을 개최 할 정도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천성이 물욕과 재욕이 없었던 탓에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그림을 나눠주길 좋아했던 연유로 이 화백은 서양화(유화)를 그리면서 물감을 살 돈이 없어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양화보다 동양화를 선호하던 시절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재료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동양화 로 전향한 것이다. 동양화로 전향하면서 무언가 의미있는 작품활동을 원했던 그가 선택한 대상은 바로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였다.

나라를 사랑하는 화백의 강한 믿음과 의지의 표현이 무궁화를 사랑하게 된 것이며 지금은 문인화가로 더 이름을 알리면서 우리의 꽃 무궁화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지만, 대부분 예술인이 밥먹기 힘들다지만 그의 청렴하고 욕심없는 마음들로 인해 더욱 더 윤택하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961년 미문화원이 관장하던 나주문화원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 나주문화원장으로 3년간 나주문화원을 이끌며 나주향토문화 창달의 기반을 조성했다. 1962년에는 나주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도 나주의 문화창달을 꿈꾸며 예술인들의 동호회격인 나주연예인협회 창설을 주도했고, 미술, 음악, 문학. 연극 등 문화예술인들 80여명이 모여 활동함으로써 나주가 예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는데 기여했다.

이 화백은 후학 교육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등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청소년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BBC 야간중학교를 설립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 박봉의 월급을 다 털어 넣어가며 무료 재능기부 등으로 운영하던 야간중학교가 국가에서 시행하는 중학교 의무교육 시작으로 마감될 때까지의 7년 생활은 이 화백의 긍지와 자랑으로 남아 있다.

여든살이 되던해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는 성북동에 지금의 문화사랑방을 열어 그림과 악기의 교육은 물론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지역 노인들의 즐거운 여가생활을 위해서 앞장서 봉사하고 있다.

이 화백은 1923년생(97세)이다. 하지만 늘 깔끔하고 건강하며 밝은 모습과 세월을 연상케하는 주름뒤에 머금고 있는 순수한 청년의 미소가 놀라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 화백의 오랜 세월 다양한 예술 활동을 비추어 볼 때 단 한 차례의 수상경력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화백의 언행과 그의 품격 속에는 정치도 없었고, 어떤 비굴함도 찾을 수 없는 순수함 그대로이며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맑은 영혼에 반해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나주의 진정한 어른이자 오롯이 진정한 예술가의 참모습만을 지닌 이 화백의 여생에 진정한 벗들의 공간이 될 화실이 많은 나주인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반드시 만들어 지고 지켜 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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