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일 선생 창의 제429주년 추모제향

임진왜란 발발 후 호남 최초 의병장, 애국 충절과 구국정신 기려

  • 입력 2021.06.27 17:49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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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시장 강인규)는 25일 정렬사에서 문열공(文烈公) 김천일 선생 창의 제429주년 추모 제향을 거행했다.
김천일 선생(1537~1593)의 추모제향은 임진왜란 발발 후 선생이 나주 금성관에서 최초 창의 기병했던 음력 5월 16일 봉행한다.

이날 제관은 초헌관에 강인규 시장, 아헌관에 오인선 나주향교 전교, 종헌관에 나준식 성균관유도회 나주지부회장이 분정(分定)됐다.
김천일 선생은 1537년(조선 중종 32년) 정월 10일 지금의 나주 송월동에서 진사 김언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세에 일재(一齋) 이항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37세 때 군기시주부를 첫 벼슬로 출사한 후 용안현감, 강원도사, 경상도사, 수원부사 등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 발발로 임금이 평안도로 몽진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은 5월 16일 나주 금성관에서 최초 근왕의병을 일으켜 북상 진군해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김천일 선생은 이듬 해 6월 15일 “호남은 국가의 근본이요, 진주는 호남의 보루이기 때문에 진주를 꼭 지켜야 한다‘는 말과 함께 경상우병사 최경희, 김해부사 이종인, 충청병사 황진과 의병장 고종후, 강희열, 진주목사 서례원 등과 3000여 병력으로 진주성 방어에 나선다.

6월 21일부터 십만 왜군에 맞서 9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했지만 결국 성벽이 무너지며 선생은 큰 아들 상건과 남강에 투신, 순절했다.
선생은 1640년 나주 정렬사와 진주 창렬사에 사액됐으며 1618년 영의정에 추증됐고 1681년 문열공 시호와 충신정려가 내려졌다.

나주 대호동 금성산 동편에 위치한 정렬사는 문열공 김천일을 비롯해 승지공 김상건, 충민공 양산숙, 관해 임회, 후조당 이용제 등 선생 5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1626년에 세워진 정렬사비(전라남도 기념물 제48호), 유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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