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경현서원

  • 입력 2006.11.13 17:49
  • 기자명 예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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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 전남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영안마을

경현서원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선유학의 정통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들을 배향하였던 곳이다.

1583년(선조 16) 나주를 중심으로한 도내 유림들이 상소를 올림에 따라 김굉필 (1454-1504)을 모실 서원의 건립이 허락되었다.
그때 나주목사로 있던 김성일(1538-1593)이 적극 지원하여 이듬해인 1584년(선조 17)에 완공되었다.

당시의 서원터는 나주의 서문밖 대곡동(현재의 경현동 부근)이었고, 서원 명칭은 [금양(錦陽)]이었다. 김성일에 이어 나주목사로 부임했던 임윤신(任允臣)목사때 지방 유생 나덕준 등의 발의로 1589년(선조 22)에 정여창(1450-1504),조광조(1482-1519),이언적(1491-1553), 이황(1501-1570) 등 4위(位)를 배향하여 오현사(五賢祠)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서원원장으로 김천일,정개청,안방준 등 호남의 명유(名儒)들이 임석하여 사풍과 학성이 인근에서 추숭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경현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08년(광해군 원년) 중건을 보았으며, 1609년에는 호남유생 김선 등이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경현]이란 액호를 하사받았다.

그후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1527-1572), 김성일(1538-1593)을 추배하여 모두 7위(位)를 제향하게 되었다. 이후 1868년 서원훼철령에 따라 경현서원 또한 훼철되기에 이른다(실제 훼철은 1871년이라고 전해진다). 현재의 서원건물은 1977년 영안마을에 이전
복원된 것이다.

당시 김희철, 유제수, 정동채 등이 크게주력하였다.

나주 경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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