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전남도 기념물 제53호
소재지 :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369
지정일 : 1981년 10월 20일
규 모 : 총높이 280㎝ 비신 높이 245㎝ 비 너비 118㎝
이 비는 임진왜란 때 무장으로 큰공을 세운 최희량 장군의 묘역 근처에 세워진 신도비이다. 비 제목은 해서로 “증병조판서무숙공수성최일옹신도비”라 기록되어 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겸성균관제주세자시강원찬선덕은 송치규”인데, 여기에 후일 송치규의 현손인 송지헌이 기록한 “추기”가 첨가되어 있다. 그 “추기”에 기록된 광무 5년(1901) 8월이 곧 이 신도비의 건립 연대이다. 그리고 건립자는 최희량 장군의 8세손 참봉 귀한, 9세손 기춘, 기정, 10손 우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비 형태는 자연석의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다.
최희량 장군은 명종 15년(1560) 나주에서 참봉 영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경명, 호는 일옹 또는 와룡, 본관은 수원이다. 선조 27년(1594) 그의 나이 35세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빙부인 충청도 수군절도사의 추천으로 선전관이 되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흥양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이순신장군의 휘하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노량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조용히 지내다 효종 2년(1651) 생애를 마치었다.
선조 37년(1604) 선무원종공신1등에 책록,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영조 50년(1774) 병조판서 에 추증되고, 순조 11년(1811)에 무숙의 시호를 받았다. 그가 남긴 『파왜보첩』은 임란사의 중요한 사료로 보물(660호)로 지정되었으며, 유저로는 『일옹문집』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