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교수의 사회비평

이재창 교수의 사회비평

  • 입력 2005.11.04 14:41
  • 기자명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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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가 부활하는 사회가 그립다



나주평야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곡간의 쌀독에 쌀이 가득 쌓일 때면 담장 안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새참시간 논두렁에는 오가는 사람을 부르는 다정한 소리로 들판은 떠들썩했다.

지금은 사라진 정겨운 모습이지만 우리 기억 속에는 강하게 남아있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나주사람들은 이러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넉넉한 계절에 패자가 부활하는 세상이 그립다는 우문이 풍성한 마음을 해치지나 않을까 해서 몹시 망설여지지만 또 생각해 보면 마음이 풍성한 계절이 아니면 이러한 질문을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가?

남을 이해 할려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있는가?

잘못이 세상에 들어나면 불문곡직하고 신문이나 텔레비젼은 정제된 단어로 정죄하고 인터넷은 막말로 죄인을 만들어 버리는 현실 앞에서 혹시 나도 잘못하면 어떨까하는 마음에 살벌하가까지 하다.

형법에 나와 있는 “최종심에서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죄인이아니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죄가 확정되었다고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이러저러한 일로 실수를 저지르게 되면 그로 인하여 개인적인 심적 고통과 사회적 질시 때문에 얼마나 많은 번민의 나날을 보내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지 아닌지 모르는 시점에서 모두가 벌때처럼 달려들어 호들갑을 떨고 매장해버리는 이 살벌한 세상이 희망이 있는 세상인가?

이러한 세상에서 안식할 수 있는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살 맛을 느끼겠는가.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한번 가슴에 묻고 싶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걸린 창녀를 시장에 끌고나와 돌로 쳐죽이라고 고함치는 사람들을 향하여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창녀와 예수님만 남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있는가? 대답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이다지도 엄격하다 못해 살벌해지고 있는가?

오곡백과로 풍성한 이 가을에 나주평야처럼 넓은 마음으로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갖자!

“엄격하게 키운 아이는 남을 포용 할 줄 모른다” 라는 말이 있다. 이런 아이는 지구상의 영원한 미아가 될지 모를 일이다. 가정마다 아들, 딸 하나 많아야 둘이며 희귀하게 세 아이를 두고 있는 세상에서 남을 포용할 수 없이 살아 갈 수 있겠는가. 이제 남을 용서하고 포용하여 함께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회만이 희망이 있는 것이다.

너그러운 세상, 용서하는 세상, 역지사지하는 세상이 되는 길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고 사회는 그 잘못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잘못한 사람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패자부활전이 활성화 되는 사회이다.

허위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기 잘못을 숨기고 잘못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우리가 가꾸고 간직해야 할 사회가 아닐까?

용서는 화합과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도약의 나주, 희망의 나주로 가는 길은 너그러움과 함께하는 마음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일 것이다. 지역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자랑스런 나주의 모습을 우리는 이 풍성한 가을에 기억하고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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