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성주부의 세상보기

이명성주부의 세상보기

  • 입력 2005.12.13 14:41
  • 기자명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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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가보자



유난히 부지런을 떨어야하는 아침이다.

어느 작가는 작품 준비를 위해 3-4일 집을 비울 때는 밥 한 솥, 국 한 솥을 그득그득 불 때 놓고야 길을 나섰다는데, 그래야 남은 가족이 안심이 되었다는데 나는 하루의 외출에도 밥 한 솥, 국 한 솥을 끓여 놓고도 짐승 챙기랴, 불 단속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이즈음 세상 주부들은 모두가 김장을 준비하느라고 아무 여유가 없지만 우리 농부들은 지금 김장이 문제가 아니다.

따뜻한 구들장의 유혹은 더더욱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시위에서 방패로 얻어맞은 어깨며 허리에 딱 한번이라도 편하게 물리 치료 받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이제 우리와 손을 잡을 수 없는, 그 억울한, 애통한 죽음, 어쩌지 못하는 네분의 농민 영정이 지켜보기에 오늘도 떨쳐 일어나 이렇게 새벽차에 몸을 싣는다.

오늘 하루도 또 투쟁이다.

진주 할머니 옷 단속 해드리고, 손주는 어째셨느냐고 물으면서도 부회장님의 출현이 반갑다.

우리는 어떤 사이였나?

들판에서 서로 바쁘게 종종 걸음쳤고 물꼬가지고 싸움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막걸리 한잔의 참을 나눈 반갑고 측은한 사이다.

이런 나들이가 언제면 끝이 날까?

가을 추수 힘겹게 거두어들이고 이젠 계절처럼, 나무처럼 우리 농부들도 은근히 따뜻한 아랫목 같은 휴식이 필요한데........

그때그때 김영삼 시절에도 우린 쉼 없이 우리의 식량 창고를 지키려 애썼다.

그런데 세상은 변한게 없다(?)

정말 여기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천석지기, 만석지기는 그 퉁퉁한 배를 두드리며 우리들을 야유했다.

살림은 뒤로하고 싸움만 한다고, 미쳤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미쳤을까?

자신의 이익을 챙길 줄 모르는 우리는 정말 미쳤을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울, 부산 찍고 홍콩까지 민족의 식량 창고를 지키러가는 우리는 정말 미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얼마 전까지 29일간의 단식 속에서도 지켜내지 못했다며 쌀 협상 국회 비준 날치기 통과를 눈물로 지켜본 강기갑 국회의원의 말을......

“대한민국 국회에 민생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농민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곳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늦게까지 남아 있는 단풍이 아름답고, 문화가 숨을 쉬며 활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스팔트 위에 앉은 농민들은 울었다.

분노와 구호로 도착한 광화문 네거리, 청와대 가는 길에서 우리 농민은 통곡을 하고 말았다.

우리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 했기에,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한 겨울 빌딩사이 차가운 골바람도 뼛속을 에이는데 굵디굵은 소방호수 물대포를 쏘아대는가?

세상이 뿌옇게 변한다. 우리나라의 오천년 역사는 누가 지켜낸 것일까?

왕도 아니요, 장수도 아니요. 그렇다고 정승도 아니요. 빈곤과 기아와 싸우면서 정신이 맑고 영혼이 성숙한 한 틀의 쌀알들- 불의에 저항한 민중이 만들어낸 역사인 것이다.

농민들이여! 한 번만 이라도 이곳에 와 보라.

당신이 천직으로 여기는 농사가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당신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느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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