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성 주부의 세상보기

이명성 주부의 세상보기

  • 입력 2006.04.17 14:41
  • 기자명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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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에 월백하고



세상이 요동치는 4월이다.

땅은 겨우내 간직해둔 씨앗을 싹틔우려 꿈틀대고, 겨울을 지나온 나무의 마른 가지는 꽃망울을 펑펑 터트리며 세상을 향해 아우성이다.



그 세상 속에 사는 우리들, 이 마을 저 마을 꽃놀이 야유회 일정이 빡빡하다.

요즈음 같으면 놀기도 되다.



이틀은 면민의 날 행사 준비로 마을 사람들과 맛난 음식 나누고 마주보며 신바람 나게 놀았다.



어제는 격동하는 나주의 새로운 역사 쓰기 드라마「주몽」의 제작 발표회가 있어서 주먹만한 얼굴의 인형 같은 예쁜 배우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노는데 정신이 팔려, 이곳 저곳에 피어나는 많고 많은 벚꽃에 주었던 눈길 거두어 오니 우리 집 배 밭에 핀 이화가 그림보다 더 아름답다.



음력 3월 보름, 보름달과 어우러진 하얀 꽃송이들, 신랑은 막걸리 한 주전자 들고 나가 달밤의 꽃향기에 취해 보자는데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으니 이것도 분명 또 하나의 슬픔은 아닐런지?

아직 미처 다 묶어내지 못한 배나무의 가지가 나의 마음을 바쁘게 하고, 햇살이 잠시라도 구름 속에 갖힐라 치면, 또 쌩쌩 아름다운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벌들이 숨어버릴까 전전긍긍이다.



올해는 또 어떤 일이, 어떤 기상 이변이 주먹만한 배를 괴롭힐까?

한해 농사가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봄에 씨앗을 뿌린 농부만이 가을의 미소를 만날 수 있고, 봄에 쟁기질한 농부만이 가을에 나락의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풍우 한미 FTA가 온다고도 하고, 인천항에, 부산항에 군산항, 여수항에 여러 나라의 수입쌀이 속속 도착하여 우리네 밥상 위에 놀려지길 기다리는 것이 4월 이 봄의 현실이지만 나는 배나무 한 꼭지, 한 꼭지에 피어있는 꽃을 들여다보며 좋은 열매 맺으라고 기도한다.



나는 내일 모레 하얀 배꽃이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는데도 그 것을 밀쳐두고 또 여수로 달려가야 한다.



이것이 희망이다.

농사짓다 싸우러가고, 농사지으며 웃고, 울고 그 속에서 나의 아이들은 쑥쑥 자라날 것이다.



내일은 내일 온다.

오늘에 충실하면 내일은 두렵지 않은 것이다.

날이 밝으면 나와 신랑은 모자 쓰고, 장화 신고 배꽃 속에서 일할 것이다.

또 나의 아이들은 왕복 십리길의 학교를 걸어서 갈 것이며, 앞 집 아저씨는 딸딸딸 경운기 소리 요란하게 손바닥만한 텃밭을 갈 것이다.

“놀면 뭐해!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하며 인삼 밭 일거리를 찾아 버스에 몸을 싣는 마을 아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눈이 시리게 하얀 배꽃의 묵직한 향기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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