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사라지는 추억을 찾아(1)

5일장…사라지는 추억을 찾아(1)

  • 입력 2004.04.14 14:49
  • 기자명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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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튀밥, 강냉이 튀밥 - 뻥튀기 장수



“자, 귀를 막으세요. 뻥입니다.!”뻥튀기 아저씨 말이 끝나기 무섭게‘뻥’소리가 난다.



닷새마다 열리는 남평 장은 1일과 6일이며 어김없이 장이 선다. 그런데 이곳 장터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35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후더분하고 푸근해 보이는 뻥튀기 장수 임덕규(67·남평 동사리)씨. 임씨의 2평 남짓 시큼한 상자각 같은 장옥을 찾는 사람들은 비스켓류의 과자에 맛을 붙이지 못하는 6-70대 아낙과 노인들이다.



포대자루에 쌀과 떡살 등을 담아 뻥튀기 장수의 집을 찾는 이들은 멀리 금천에서도 찾는다.



장구통 모양의 시커먼 기계를 돌리며 불로 가열해 튀밥을 튀기는 모습은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만드는 매체가 된다.



주전부리가 그리 흔하지 않던 40대 이후 세대들의 추억. 마을에 뻥튀기 장수가 들어오면 동네 어귀와 큰 공터는 철없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덩달아 커졌다.



100호 이상 모여 사는 큰 마을일수록 밤이슬이 내려도 뻥튀기 장수는 기계와 짐을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그 때 당시에는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모터와 가스 불이 대신하지만 리어카에 기계와 장작 땔감을 싣고 마을을 돌아다녔던 때가 있었지하고 회상하는 뻥튀기 장수 임씨는“옛날 마을을 돌며 이 장사를 했을 때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반겼고 인기도 꽤 많았다”고 옛날을 회상해 낸다.



장날 뻥튀기 장수를 찾는 사람들은 꽁꽁 말린 쌀을 비롯해 가을 추수 후 처마 끝에 메달아 말린 속살을 허옇게 들어낸 강냉이, 명절에 먹다남긴 떡살 등을 들고 나타난다.



1되가 충분히 넘는데도 한되를 고집하며 주인 임씨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뻥튀기 기계는 어지럽게 또 돌아간다.



순서대로 정확히 1되를 계량해 깡통에 담고 버스를 기다리는 마냥 쌀과 옥수수가 담긴 깡통들은 차례로 줄을 지어 선다.



2중 무쇠 솥에 반숟가락 가량의 사카린을 넣고 불을 지핀다. 현재 사카린의 위치에 설탕이 자리했지만 뻥튀기 장수에게는 아직도 사카린이 보물 쌈지처럼 옆을 지킨다.



1되를 튀려면 7∼8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뻥을 튀는 순간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오히려 간단하다. 무쇠통 압력게이지가 10의 숫자를 가리킬 때 뻥을 튈 준비가 완료됐다는 것이 증거이다.



임씨가 뻥을 튀려는 움직임에 주위 사람들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두 눈을 질끈 감아 귀를 꼭 틀어막는다.



큰 함지박 통 앞에 기계에 쇠꼬챙이를 끼워 당기면‘뻥’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주변에 작열하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뻥튀기 장수 35년 경력. 임씨는“장이 선대도 하루 고작 20번정도, 어떤 날은 고작 서너 번 튀어 달랑 만원짜리 한 장이 쥐어지는 날도 있다”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1되 튀는데 2천5백원, 하루 3만원 벌기도 벅차다는 임씨는 딸 다섯을 이미 출가 시켰으며 이제 직장 다니는 막내아들만 장가를 보내면 자식농사는 끝이라며 또 씨익 웃는다.



쌀 튀밥과 강냉이 튀밥은 심심풀이 아이들 간식으로, 도회지 손자손녀가 시골을 찾으면 응당 이들의 주전부리가 되는 기호식품으로 우리 주변에 살아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이를 튀어주는 뻥튀기 장수는 앞으로도 사라질 수 없는 5일장 한편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도 임씨의 가게에는 듬직한 세월의 무게만큼 십 수년을 함께 해온 짐빨 자전거가 2평 남짓 가게 옆을 지키며 이곳을 찾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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