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들이여! 6·25의 교훈을 잊지 맙시다.


  • 입력 2007.06.25 12:09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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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서림교회 원로장로  노영균
 광주서림교회 원로장로  노영균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6·25노래 가사의 일부다. 6·25가 발발한지 57년이 되었다.
6·25의 참화를 몸소 겪은 선배의 한사람으로서 6·25의 참상을 겪지 못한 전후세대에게 625의 교훈을 전하고자 한다.

6·25가 일어난지 반백년이 지났지만 한국인은 왜 6·25를 잊지 못하는가?
6·25를 잊으면 이 땅에 전쟁이 다시 온다. 제2의 6·25를 막기 위해 온 국민이 국가안보태세를 굳게 다져 나가야 한다. 6·25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상태 54년째 계속되고 세계전쟁사상 가장 인명피해가 큰 전쟁으로 그 상처가 엄청났다.

김일성 남침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500여만명이 사상되었다. 천만여명의 이산가족과 4만여명의 유가족, 3만여명의 상이용사, 3만 6천여명의 UN군 사망자, 10여만명의 고아와 과부, 광주 보훈병원만 해도 6·25당시 상이용사 80여명이 병상을 지키며 통한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기에 6·25는 영원히 잊지 못 할 동족상전의 비극이다.

이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전후 세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북한의 김정일은 6·15공동선언대로 도라산역이라도 방문하여 6·25도발만행을 민족 앞에 사죄하고 아직도 억류중인 국군포로 1만 3천여명과 의용군 4만2천여명을 송환해야 한다.

또 적화야욕을 포기하고 한반도가 공멸할 영변 등 16곳의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BDA자금도 해결되었으니 2·13합의를 속히 이행하고 핵 불능화 조치를 위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즉시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

6·25의 가장 큰 교훈은 좌우이념 갈등으로 민족이 분열하고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을 뿐 아니라 정치인까지도 서로가 분열 1949년에는 민족의 스승인 김구선생이 암살되는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하여 6·25를 겪었다. 지금의 한국현실은 어떠한가?

진보와 보수 지역간, 계층간 갈등으로 4분 5열 되고 있다.
다음 교훈은 유비무환의 굳건한 안보태세를 굳게 확립해야 한다. 6·25당시 우리국군은 10만명, 북한군은 19만 8천명으로 1:2의 열세였다. 북한은 24개 사단병력을 확보하고 250여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선전포고 없이 남침을 감행했다.

우리군은 전투기나 전차가 한 대도 없는 국가안보준비가 미비한 상태였다.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 양성이 없었기에 임진왜란을 만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북한의 전차를 파괴할 무기가 없어 수류탄을 들고 육탄으로 공격했다니 사후약방문격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유비무환의 안보태세 확립이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6·25때 16개국의 UN군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했겠는가?

우방에 배은망덕해서는 안된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4강 외교를 굳건히 할 때 북핵 불능화의 2·13이행을 가져 올 수 있다. 전후세대들이여! 6·25는 북침이 아닌 남침전쟁이다. 보수진보, 지역간, 계층간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국론을 통합할 때 제2의 6·25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가슴속 깊이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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