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암살

▶ 기자수첩 - 박철환 기자

  • 입력 2007.07.16 13:10
  • 기자명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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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4편과 5편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를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남는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 로마의 제2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물 율리우스 카이사르.
인류에게 최초로 과학적인 달력(율리우스력)을 도입한 인물이며, 영어로 7월인 JULY(줄라이)도 카이사르가 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용어다.

로마를 본거지로 프랑스, 아프리카, 이집트, 페르시아까지 로마의 휘하로 편입시켜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를 완성시킨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너무 먼 시대,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좀 더 친밀감 있게 우리와 연관시켜보면 고구려를 세운 주몽을 생각하면 된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제2의 부흥기를 이끌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주몽이 다물군을 이끌고 신나게 한나라를 괴롭히고 있었던 시기다. 즉 카이사르와 우리나라의 주몽은 동시대인이었고,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와 염문을 뿌릴 때 우리나라의 주몽도 소서노와 염문을 뿌릴 때였다.
어쨌든, 로마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카이사르에게도 정적은 있었다.
그의 정적은 공화정 체제를 추구했던 원로원 세력이었고, 이들이 바라본 카이사르는 군주제를 선호하는 독재자였다. 결국 이들은 카이사르 암살을 도모했고, 그의 암살로 로마시민들을 독재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4명으로 구성된 암살단은 마침내 카이사르 암살에 성공했다. 그들은 오랜 로마시민들의 숙원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피묻은 손으로 그들은 로마 광장에 가서 시민들에게 외쳤다.

“로마 시민들이여! 드디어 로마 시민들은 해방됐다. 독재 위선자로부터 로마는 드디어 해방됐다”고 그들은 외쳤다. 그들은 로마시민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성난 로마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도리어 암살자들은 로마의 반역자라며 폭동을 일으켰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들은 불과 3일만에 로마를 탈출해야 했고, 급기야 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자신들은 로마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명확한 대의명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민들은 전혀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이들은 결국 외국으로 망명한지 2년 만에 모두 카이사르 추종자들에 의해 처형되거나 현장에서 자결했다.

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을까?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들도 모두 로마의 엘리트였던 원로원들이었고, 또한 로마를 사랑했던 지성인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자신들이 카이사르를 처단하면 모든 로마시민들이 환호할 것이라고 착각했을까?

불행히도 여기에 대한 답도 사실은 카이사르가 가지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암살 당하기 전에 당시 로마의 최고 지성인이었던 키케로에게 보냈던 편지에 그 답이 있었다.

키케로에게 전달된 편지에 카이사르는 자신의 정적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이 로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밖에 볼 수 없는 이들이다”라고.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필자가 이렇듯 황당하게 먼 옛 이야기이자 우리와 전혀 무관한 로마인 이야기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나주를 한번 생각해 달라.

그래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아마 그 분들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이들이거나 아니면 세상을 아주 쉽게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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